#연말

by 미셸 오


연말의 설렘과 웅성거림이 느껴지는 때

추운 겨울 거리를 걷다가 문득 따뜻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거리 모퉁이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아래 구수한 군밤을 볼 때가 아닐까.

참 오랜만에 보는 군밤장수였다.

예전에는 군밤을 껍질을 까지 않고 팔았는데 군밤장수 아저씨가 면장갑을 끼고 먹기도 좋게 까놨다.

3000원어치를 샀는데 양이 많다.

사람들이 북적하게 오가는 거리에서 깐 군밤을 입안에 넣고 씹으니 포슬포슬한 밤이 입안에 가득 찬다.

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딸도 입안에 깐밤을 넣는 것을 보니 녀석도 이 분위기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연말의 부풀어 오르는 감성을 입안에 가득 터트리며 거리를 걷는다.

아직 낮이라 불이 켜지지는 않았으나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 가운데 우뚝 솟았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친다.

군밤은 역시 추운 겨울에 호호 불면서 먹는 이 맛이다.

그래 즐기자 이 시간을. 이 군밤 맛을.


오늘은 가는 곳마다 연인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서로 보리밥 쌀밥을 하면서 서로 볼을 꼬집고 머리를 쓰담 쓰담하고 눈에 꿀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들의 눈에는 서로의 얼굴만 보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지워진 배경에 불과하다.

그 싱그러운 젊음과. 눈에 사랑하는 사람 외는 보이는 것이 없는 온전한 열정에 자꾸 흘깃거리며 보게 된다.

그래 그 시간들을 즐겨.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더욱더 찬란하지.


그 사랑스러운 연인들을 볼 때

나의 지난 시간들이 오버랩된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추운 거리에서 서로 볼을 자기 손으로 녹여주고 밤을 까서 입에 넣어주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건 말건. 지금처럼 핫팩이 없던 시절이라 사랑하는 사람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 걸음치던 그때의 내가 나였던 것이 맞아? 하는 의문이 생길 만큼 나이를 먹었다. 게다가 요즘은 기억력이 없어지는 듯한데.

지난 경험들이 사실 같지 않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처럼 낯설고 어색하다.

큰 도로를 지나 백화점 건물로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여러 매장을 돌고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발바닥이 아프도록 걸었다. 연말은 그렇더라.

붐비는 사람들 속에 한껏 나를 집어넣고 그 흥성스러움 안에 나를 가두는 것.

그렇게 피곤하게 걷고 정신없이 눈 호강을 하고 입맛을 충족시키며 한 해를 마감하는 것.

그래서 어둠이 내리는 번잡한 거리를 벗어날 때는 몸은 젖은 솜 같았으나 기분은 한껏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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