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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호와여

#왜 죽기 싫을까

by 미셸 오

믿는 자들의 믿음의 크기는 언제 드러날까 .그것은 거의가 죽는 순간이라고 한다.

믿음이 견고한 자들은 죽는 순간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행복할 것임을 알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죽는 것을 무척 두려워한다.

나의 친정아버지만 해도 올해 연세가 일흔일곱인데 7년 전에 담배와 술을 모두 끊으셨다.

물론 가족들의 줄기찬 기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는 다니지 않고 있고.

하루에 담배를 적어도 세 개비 이상은 피우고 술을 즐기던 분이셨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폐에 기포가 생겼다고 진단을 받고 바로 담배를 끊고. 또 어느 날 뒷목이 당긴다고 하고 혈압이 높다는 진단을 받은 후 바로 술을 끊으셨다. 그뿐인가. 매일 프림 커피를 달고 살던 분이었다.

기분이 좋아도 기분이 나빠도 식사 후에도 아버지의 손에는 늘 1회용 스틱에 담긴 프림 커피가 들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어느 날 끊었다.

요즘에는 원두커피만 조금 드시고 스트레칭을 자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확실히 건강해진 것을 내가 보아도 느낄 수 있다.

만일 아버지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다면 그렇게 단호하게 즐기던 것들을 끊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주변에 아버지 또래의 사람들 중에는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분 외에도 다들 크든 작든 쇠약해진 육신으로 인한 병을 갖고 있다. 그런 환경을 접하면서 아버지는 더더욱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성경 말씀을 믿는 나 역시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쾌한 이미지는 어쩔 수가 없다.


죽음 이후의 삶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꾸 죽음 이후의 이야기들을 꾸며댄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귀신'이나 '저승사자'라는 존재는 무척 두려운 것이었으나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귀신들이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설정되는 듯하다.

영혼을 죽음의 강으로 인도해준다는 오랜 전설에 나오는 저승사자는 무섭고 괴기하게 생겼건만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저승사자는 너무 잘생겼고 착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인간을 도와주는 귀신이라니.

그런 류의 드라마나 영화 등을 접한 사람들은 귀신이나 저승사자를 미화하여 감히 귀신을 불러들이는 주술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성경에서 귀신은 사단의 졸개로 인간을 해코지하는 악당이지 결코 인간을 돕는 류가 아니다. 그러나 악한 영들에 대해 근거 없는 친근감을 갖게 하는 텔레비전의 영화나 드라마는 이제는 흔하고 흔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교회 고등부 이승준 목사님도 이런 드라마에 심취한 학생들에게 그런 존재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주시려는 의도에서였던지 <누가복음 16장 19절-31절> 의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을 주제로 설교하셨다.

죽음 이후에 지옥으로 간 부자와 천국으로 간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음을 인식시키고 인간이 왜 죽기를 싫어하는지와 사람들이 귀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애초부터 죽지 않도록 만들어졌던 인간이 죽게 되었으니 억울함이 본능적으로 남아서 귀신같은 것들이 한이 맺혀 돌아다닌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와 요한복음의 말씀에 근거하여

죽음은 일시적으로 육신과 영혼의 분리가 일어나는 것으로 육체는 땅에 묻히든 화장이 되든 분자화 되고

영(혼)은 각기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분자화 되었던 육신이 새로운 육신으로 부활이 된다고 한다. 물론 그때 살아 있는 자들은 육신이 썩어지지 않을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이 목사님 설교의 대충 요약이다.


고린도 전서 15장

51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절-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요한복음 5장

28절-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절-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께서는 영원히 죽지 않을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인간을 대신하여 죽었다.

사람들은 죽어서 썩고 흙이 된 인간의 육신이 다시 부활한다고 하면 믿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신 분이 다시 그 인간을 재생하는 것이 무어 그리 힘들겠는가.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멋진 빌딩을 짓는 인간의 기술을 보면서

그런 창조적인 힘도 결국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 안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님이란 존재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을 느꼈다.

그러므로 죽음은 영육의 일시적인 분리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닌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또한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이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연약한 육신은 버리고 예수님 오실 때 영원한 새몸을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말고 성경 속의 '부자와 나사로'에서 처럼 이 땅에서 이름을 남기는 자(부자)가 아니라 하늘의 생명 책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나사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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