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1절-8절
::예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과부와 재판장' 이야기다.
이 비유의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배경-어떤 도시
인물-과부. 재판장
인물의 성격-재판장: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함(2절). 계속 귀찮게 구는 것은 딱 질색임. (5절)
불의함.(6절)
과부:원한을 품고 끈질기게 하소연하는 것으로 보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그럴 수 없을 만큼
원한이 크고 깊은 사람이라 추정됨(3절 참고)
주님은 위의 이야기를 하신 후 말씀하신다. 불의한 재판장도 자신을 자꾸 찾아와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면 원한을 풀어주는데
7절-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기도를 해본 사람들은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은혜를 받을 때는 오랜 시간 기도를 할 수 있지만 기분이 상하거나 일에 지치면 기도의 문은 곧 막혀버리곤 한다. 기도가 막힐 때면 세상살이에 온갖 짜증이 일어나게 되고 기도의 시간은 더 짧아져 간다.
은혜를 받아 기도의 풍성함을 계속 누릴 수 있다면 누구든지 예언을 하고 누구든지 귀신을 쫓는 능력을 갖게 되리라.
마틴 루터는 조용히 기도를 시작하려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오만 가지 훼방꾼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고 하였다. 사탄은 여러 가지 이유들을 총동원하여 기도를 못하도록 사방에서 에워싸고 극렬하게 방해 공작을 편다는 것이다.
세상의 기도가 사라지면 믿음도 사라진다 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도란 내게 응답을 있을 줄 알고 믿고 매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원수가 있어 원한 맺히게 하였다면 본인의 심정은 어떠할까. 원한이 깊으면 마음의 병이 생길 정도가 된다. 또한 원한이 깊을 때 믿는 자들은 어찌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전에서 '부르짖다'라는 단어의 뜻을 찾으면 아래와 같다.
1. 큰 기쁨이나 슬픔, 고통 따위의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소리 높여 크게 떠들다.(네이버 사전)
예전에 우리 교회는 금요 기도회 시간에 소리 높여 기도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을 매우 꺼려하였다. 아마도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리라.
기도를 오래 하다 보면 성령의 감동으로 목소리가 터지고 울부짖는 기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기도 후에는 속이 다 후련해지고 마음속의 쓴 뿌리들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어느덧 그 묵은 상처들이 오롯이 치유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 교회나 다른 사람의 기도를 진심으로 아파하며 하게 된다.
엄숙하고 조용하고 진지한 기도를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떤 교회 집사님은 주일 예배 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 구석에서 양복을 입고 사람들을 마주하고 기도를 폼나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훌륭한 믿음의 사람처럼 보였다. 말없이 홀로 하는 기도였는데 아마도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이 잡담을 하고 오가는 곳에서 기도를 드러내어 할 필요가 있었던가 싶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그 집사님의 실제 삶은 경건함과는 퍽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반면 울부짖으면서 하는 기도는 자기감정의 솔직한 표현으로 남을 의식하면 절대 할 수 없는 기도다. 하물며 가슴에 맺힌 한을 고백하는데 소곤소곤 기도가 될 리 없지 않은가.
주님께서도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언젠가는 기도가 응답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였듯이 우리의 기도도 밤이 새도록 힘겹게 씨름판을 벌이듯 하는 기도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어느덧 밤은 지나고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