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집

by 미셸 오
결혼 후

첫 살림살이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가 처음 얻은 집이 골목 안쪽의 이층 집 양옥이었다. 사춘기이후부터

부모님과 아파트에서 살았던 나는

결혼과 함께 독립이라는 낯선 문 앞에 서서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우리가 살 이층 집은 따스한 겨울 햇살에 아이보리색 페인트가 발라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주인 집하고 따로 틀어져 만들어진 이층 대문을 따라 계단을 오르게 되어 있어 주인집 눈치 같은 것은 볼 필요도 없는 독채 전세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방이 두 칸에 부엌과 다락.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까지 있었다. 게다가 이층 집 마당에서는 저 멀리 바다도 보였다.

처음 신혼부부의 집 치고는 꽤 만족스러웠다.


골목을 빠져나가면 큰길 입구에는 마트가 있고 한 정거장쯤 이어진 긴 골목은 얼추 비슷한 이층 양옥집들이 반대편 골목 끝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일렬로 늘어선 건물 옆은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려고 방치해둔 넓은 땅이 흙바람을 일으키는 황량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빈 공터 위로는 넓은 찻길이 있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사를 하면서부터 일주일 간은 살림살이를 장만하느라 해가 지면 둘 다 곯아떨어져서 집 주변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개인 단독 이층 집에 산다는 것이 그리 편한 것이 아님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한낮에 문밖의 환한 빛을 원 없이 들여보내 주던 창문들이 밤이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검은색으로 변하고 집 옆의 황량한 벌판에서는 겨울바람이 모질게도 집 문이란 문은 다 흔들어대었다.

무엇보다 깊은 밤이면 골목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꼭 우리 집 이층 계단을 오르는 소리로 들려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혹시나 도둑이나 낯선 사람이 찾아들까 두렵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아파트의 든든한 철제 문안의 공간들이 참 안전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한적하고 시원하게 뚫려 보였던 집의 문이란 문. 창이란 창문은 다 내 개인의 삶을 밖에 다 드러내 보여주는 개방장치인 것처럼 불편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아파트는 커다란 입구 문 한 개만 잠가두면 걱정할 일이 없는데 이 단독주택의 많은 문들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출구처럼 느껴졌다.

리로 된 현관문. 나무 유리로 된 부엌문. 그리고 대청마루에 있는 큰 여닫이 유리문들. 방마다 큰 창문이 두 개씩. 그런데 그것들도 미처 커튼을 달지 못해서 밤이면 거침없이 막아서는 창의 어둠들.

얼마든지 나쁜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침입이 가능한 무방비의 집이었다.


그렇다고 주인에게 창문마다 안전 철제 시설을 달아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계약은 끝났으므로.

연탄보일러에 연탄을 갈러 밖으로 신을 신고 나가는 것도.

밥을 짓기위해 작은 방을 거쳐가는엌도.

좁은 마루에 길게 달린 여닫이 문 네 개도 싫었다.

게다가 얼마나 외풍이 심한지 보일러를 하루 종일 돌려도 실내온도는 미적지근하였고.

그래서 밤이면 추웠다. 아파트에서 겨울에 얇은 이불을 덮고 반팔 옷을 입고 산 지난날이 얼마나 편하고 안락한 것이었던지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 아파트에서 살았던 시간 속에 가 있곤했다.


이사하고 한 달이 지났나?

서울에 사는 한 친구가 내가 사는 곳으로 볼일이 있어 온다면서 굳이 우리 집에 들르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아마 도착하면 밤 9시쯤 될 거야."

나는 전화기 속의 친구의 목소리를 그렇게 들었다.

그러나 아홉 시가 지나서도 친구는 연락이 없었고 남편과 나는 기다리다 피곤해서 잠에 곯아떨어져 버렸다.

꼴깍 단잠이 들었던가.

쉴 새 없이 들리는 전화를 잠결에 받았다.

우리 집 골목 입구 마트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옆에 자는 남편을 흔들었다.

그러나 피곤한 남자는 일어날 줄 모르고 나는 정신없이 대충 윗옷을 걸치고 후들거리는 몸을 다잡으며 골목길에 혼자 내려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야밤.

골목 안의 가로등 불빛도 희미한 정말 깊은 겨울밤이었다. 살을 에는 바람이 따뜻한 이불속을 헤집고 나온 나의 몸을 으스스 떨게 하였다.

너무 늦은 밤이라고 생각했지만 희미할 뿐. 발길은 앞을 향했다.

저 가까이 검은 전봇대 앞을 지나기만 하면 마트의 불빛을 볼 수 있었는데 잠을 덜 깬 상태라 발이 질질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세게 불어 대충 걸친 내 코트를 잡고 흔들었다.

내가 끄는 신발 소리만이 골목을 크게 울렸다.

낮이면 대문 안에서 늘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짖어대던 한 이층 집의 개도 그날만은 깊은 잠에 들었는지 조용한 밤이었다.

졸음에 겨운 내가 걷기에는 너무 길고 먼 검은 터널 같기만 하였다. 어쩌면 나는 몽유병자처럼 잠을 깨지 않은 상태로 길을 걸어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뒤에서 또는 걷는 길 옆의 빈 공터에서 누군가가 뛰어와 나를 붙잡을 것만 같은 공포심이 들기도 하였고 그 상황 속에서 잠이 깨고 정신이 차츰 맑아지자 그토록 어두운 밤에 여자를 혼자 보낸 남자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하고 급격한 어둠의 깊이를 느끼며 발걸음을 재게 놀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긴장하며 마트 앞에 갔을 때 친구는 공중전화기 앞에서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중이었는데 마트도 이미 문을 닫은 상태여서 마트 앞 큰 길도 어둑하였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가 약속 시간은 어긴 것을 알았다.

"지금 몇 시야?"
나는 친구를 본 순간 시간부터 물었다. 친구는 약속과는 다르게 열두 시가 다 되어서 우리 집 근처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그날의 골목길의 경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어렸을 때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집집마다 문 안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문을 골목으로 내놔서 불빛이 환하게 골목을 비추이던 그런 복잡하고 정감 있는 골목이 아니라

이제 막 이층 집 양옥집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일렬로 지어진 대문을 등지고 돌아선 그런 골목집에서의

경험은 정말 춥고 무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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