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날

by 미셸 오


비가 온다.

오랫만에 창틀에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정갈하게 가라앉는다.

그간. 1년간의 시간들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슬펐고 힘들었다.


십여년 만이던가?

예전에 내가 가르쳤던 학부형을 만났다. 딸을 셋 키운 엄마인데. 정말 끈기있게도 세 딸들을 내게로 보내 국어를 배우게 했던 엄마다.

내가 엄마라도 한 선생에게 그토록 장시간 자신의 아이들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 보낼 수 있었을까 싶다.

초밥 집에서 마주한 그녀는. 이제 장년의 아줌마.

내게 배운 큰 딸은 이제 서른 다섯 살 이란다.

시집을 가지 않아 걱정이라니. 예전에는 명문 대학에 진학을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걱정을 했었는데.

자식에 대한 걱정은 한이 없는 것 같다.

지난 달 엄마의 장례식으로 인해 연락이 닿았고 또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는데.

엄마의 장례식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시어머니 장례식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는 시어머니 돌아가시는 날 곁에 아무도 없었지 뭡니까?"


그러니까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어머니를 간병인이 있는 병실에 입원을 시켰는데 증세가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더란다.

그런데 간병인이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라고 해서.

미리 계획이 되었던 대만 여행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고.

한국에서 비행기가 뜰 때 휴대폰을 끄고 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 휴대폰을 켰더니.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뜬 것이다.

이때부터 두 부부의 피말리는 도로 한국행 작전이 시작되었다.

하필 성수기여서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겨우겨우 급하게 비행기 좌석은 두 개 얻어내고 돌아서는 길.


"공항이 얼마나 넒은지 몰라. 둘이서 정신 없이 비행기를 타려고 뛰는데 어디로 들어가는 게이트인지 몰라서 이리로 저리로 정신없이 뛰어다녔지. 신랑은 또 신랑대로 혼자 뒤도 안돌아보고 급하게 뛰어가버려서 안보이지.

나는 나대로 찾아다니고 가까스로 비행기에 올랐는데 옷이 땀으로 홀랑 젖었더라니까요. 저랑 나랑은 자리가 저 멀리 뚝 떨어져 각자 앉아 왔지요. 급하게 얻은 티켓이어서 할 없었지. "

김포공항에 도착해서도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마지막 고속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택시를 타고 급하게 달렸건만 터미널에 내려 버스를 타려는데 마침 또 버스는 이미 출발. 뒷모습을 보이며 가고 있더란다.

할 수 없이 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심야 버스를 타고 새벽에 병원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였다.


"병원에서 환자의 증세가 이렇다 저렇다 가족들에게 언급을 해주었으면 여행을 안갔지요. 도통 그런 말도 없고. 간병인도 괜찮다 하지. 그러니까. 대만 땅 밟자마다 도로 돌아온 여행길이었지요."


생전에 아들 딸 많이 낳았어도 돌아가실 때는 홀로 가셨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보니.

나의 엄마는 내가 있는 옆에서 호흡을 마치셨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돌아가신 후.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나는 정말 엄마에게 최선을 다했던 걸까.

오랜 간병에 지쳐서 엄마의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버지의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너무 싫었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엄마는 평생.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겨우 일년이었다. 아버지는. 그것도 딸이 거들어준 간병.

나는. 내 인생에 엄마의 죽음이 인생의 한 문이 닫힌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은 누구나가 겪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 엄마가 없다는 슬픔의 가시가 가슴 안에 꼭꼭 박힌다.

그러나

한 개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한 개의 문이 열린다고 한다.

이제 내게 열려진 그 문을 기대하며 또 준비하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이 닫힌 문은 내게만 주어진 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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