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고 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서. 책과 노트북에 쌓여 지내고 있다.
그러나 책을 언제나 그랬듯이 몇 장도 못 읽고 뒤적거리다 쌓아둔 것만 열 권이 넘고 노트북으로는 엉뚱하게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계속 보았다.
마땅히 드라마도 볼 것이 없어지면 흰 종이를 가져다가 계속 책상 위에서 연필로 낙서를 하며 놀았다.
나는 한때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좀 들었다.
돈 좀 있는 부모 슬하였다면 미술대학을 갔을지도 모른다. 미술대학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을 듣고는 미리 포기해버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만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당시 나의 부모님은 만화 그리는 것을 너무 싫어했다. 그리고 나는 만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강한 의지도 없었기에. 그렇게 해서 나의 그림 실력은 그때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얼마나 만화를 집중해서 그렸던지 처음에 어색했던 실력에 기름이 부어지듯 나중에는 슬슬 잘 그려진다. 만화를 그릴 때는 손 그리는 것이 제일 어렵다. 그래서 얼굴만 그리는 걸로.
이마저도 싫증이 나면.
무더위가 좀 가시는 초저녁에는 집을 나서서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었다.
울창한 숲과 나무들이 우거지고 한적한 산책길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곤 한다.
대학교는 이미 방학이어서 캠퍼스 안은 조용했다.
가끔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은 학생들 몇몇과 동네의 낯익은 사람들을 마주칠 뿐이다.
특히 학교 곳곳에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혹은 잔디밭에 엎드려 있는 고양이들은 마주치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고양이는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지 할 일만 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 곁에 먼저 뛰어 왔던 그 고양이가 말이다.
그렇게 또 걷는다.
여자들 서너 명이 무리를 지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고 있다.
60대에서 70대로 보이는 사람들.
"할머니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그랬었지."
엄마는 평소에 반응이 빨랐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길을 가다 예쁜 꽃을 볼 때도.
눈을 크게 뜨고
"맛있다. 흥흥~너무 맛있다"
"아이고 예뻐라~~~ 너무너무 예쁘다~"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없어져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사방이 산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대학교의 캠퍼스를 걸어 학교 후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서 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 저 멀리서 강아지가 주인을 따라 종종 걸음을 친다. 강아지들의 네 발이 교차로 착착 움직이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갑자기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들 앞을 가로지른다.
"냐옹~"
내가 그것을 반기자 갑자기 고양이가 걸음을 빨리하고는 나무 사이로 숨어버렸다.
"하하하" 딸이 옆에서 웃는다.
"안 보던 고양인데"
"아냐. 저 고양이 여기 사는 고양이 맞아. 새끼를 낳았나 봐. 배가 축 처졌어."
"그렇군."
나는 또 지나가는 고양이가 없는가 고개를 돌리고 살펴본다. 얼마 전에 잔디밭에 엎드려 있던 그 고양이다.
우리 앞을 지나친 흰 고양이
학교 정문을 나오니 남학생과 여학생 서넛이 편의점 의자에 앉아 깔깔거리고 있다. 가게들이 하나 둘 불을 환하게 밝혔다. 이 곳에 대학교가 있으니 한적한 저녁의 거리에 젊음의 활기가 돈다.
두 달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옆에 있지 않다는 것뿐.
얼마 전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순신 장군의 호흡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고 과학적 근거를 대는 것을 보고는. 이 세상에 엄마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 숨결이 남아 나와 같이 호흡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빨리 잊고 싶다.
엄마의 흔적을 느낄 때마다 나의 두통. 이명. 어깨 결림. 시력저하가 더 심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던 나였는데.
두 달간 지속된 이런 일상이 결코 헛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무의미한 하루 속에서 어쩌면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깊은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이미 해는 져서 밤이 되려 하고 있다. 모기에 물렸는지 몸이 가렵기 시작한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