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우리 집에 들른 나의 친정아버지는 오래간만에 딸이 끓인 미역국을 드셨다.
그런데 참 밥을 빨리도 드신다. 국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넣어 볼이 빵빵한데도 음식을 씹으면서 계속 국에 만 밥을 떠 넣는 것이다.
원래 저렇게 빨리 잡수셨나? 원래 밥 먹는 시간이 짧기는 하였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 아버지의 식사시간은 더 급해진 것 같았다.
"좀 천천히 드세요. 어디 가실 것도 아니면서"
혹여나 사래라도 들까 봐 염려되어 한마디 하였더니
"습관이 되놔서"
그러신다.
나 역시도 밥을 빨리 먹는 편이다.
천천히 먹는 다고 하는데도 식당에 가면 남들보다 일찍 숟갈을 놓게 된다.
내가 이렇게 밥을 빨리 먹게 된 데는 학원 일과 관련이 있다.
밀려드는 수업 시간으로 밥 먹을 시간이 없을 때 김밥 하나를 뚝딱 먹어 치우면 거의 1분에서 2분 걸렸다.
그게 습관이 된 듯한데 그래서 나는 늘 체했다. 가스활명수를 늘 옆에 두고 살았다.
아버지의 빠른 식사 습관은 어디서 오는 걸까. 평생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온 삶의 흔적 같아 괜히 짠하여지는 것이다.
시계를 보지는 않았지만 역시 5분 이내로 모든 식사가 끝난 듯하다.
식사 후 커피를 끓여 냈더니 물 마시 듯 서너 번 들이킨 후 화단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제 집에 가자."
그러면서 엄마를 재촉한다.
엄마도 아버지의 재촉에 마지못해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늘 불만이다.
예전부터
아버지와 오붓하게 식탁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식사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늘 아버지는 바쁘게 서둘렀다.
특히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 가장 난감하였다. 먼저 숟가락을 놓은 아버지는 가족들이 밥 먹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먹고들 나오너라. 밖에 나가 있을게."
그러고는 먼저 나가버리곤 하였다.
어떤 연예인은 냉면을 먼저 먹은 남편이 냉면을 미처 다 먹지 않은 자신을 남겨 두고 먼저 나가는 바람에 이혼을 결심했다던데.
아버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젊어서의 나는 가족과의 식사 시간도 맞춰주지 않는 아버지와 외식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내의 밥그릇에 남긴 밥을 자신의 국그릇에 부어 담는 아버지의 모습도 왠지 서글프다.
예전에는 아내의 밥그릇에 남긴 밥을 먹을 만큼 식사량이 많은 분이 아니었다. 밥상을 물린 아버지의 밥그릇에는 늘 밥이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문득 달라져버린 아버지의 식탁 앞에서
오늘만은 그렇게 서둘렀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쫓기듯이 살아온 삶에서 편안한 상태가 오히려 더 불편하고 두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에서 뭐 좀 봐야 살 거 아냐.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해대니 장을 볼 수 있나? 영감이 평생 지 멋대로야"
짜증을 내면서 내게 하소연하는 엄마였다. 검소한 엄마는 같은 물건이라도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 사야 직성이 풀리는데 아버지는 가까운데서 필요한 것이 보이는 대로 사는 편이다.
그러니 두 분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차에서 엄마를 내려 주고 눈치껏 주차를 해가면서 기다리는 아버지로서는 장에 들어간 마누라가 빨리 오지 않아 답답하겠다 싶지만 나도 주부인지라 막상 장에 들어서면 그렇게 후닥후닥 사기는 더 힘들다는 것을 안다.
뭘 좀 흥정할라치면 휴대폰을 울리며 재촉하는 남편이 그지없이 미운 엄마는 그 마음을 늘 딸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엄마의 남편을 향한 가장 저속한 말은 "영감탱이~" 다.
:그러나
요즘 그토록 싫어하는 영감의 간병을 받는 엄마는 '영감탱이'라는 단어를 일절 쓰지 않는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로는 아버지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도 서로에게 한결 부드러워져 있다.
이제 서로의 늙은 모습을 한껏 실감하며 오래 산 부부로서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떤 애틋함이나 연민 같은 감정으로 서로를 챙겨주는 것 같다.
그래도 서두르는 것은 어쩌지 못하는 듯하다.
:이제
:인생의 황혼을 지나는 부모님들이 이제 급할 것 없는 인생길을 그저 편하게, 느릿느릿 걸어가시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