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며칠 전 대도시 부근 신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대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한적한 소도시에 처음 살던 때를 생각하면. 그땐 왜 그렇게 심심하고 지루했던가.
그러나 십여 년 넘게 살다 보니 내 몸도 마음도 그곳에서의 삶에 익숙해져서 가끔 도시를 가게 되면 정신이 산란하고 머리가 지끈댔다.
그러나 이 곳은 적당하게 조용히 적절히 북적인다.
아마도 그런 점이 마음에 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곳을 내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유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 부터다.
이사를 하면서 산 지 얼마안 된 냉장고는 개인 사정상 놔두고 오게되었다. 다시
새 냉장고를 들이던 날
키 180cm 이상의 아주 건장한 남자가 대학생으로 뵈는 남자 한 명과 함께 냉장고를 배달했다.
보통은 큰 냉장고를 들일 때 냉장고 문을 떼내고 집안으로 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아저씨는 냉장고는 복도에 세워두고 우리 집 철제 대문을 혼자서 떼어내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같이 따라온 젊은 조수의 도움 한 번 없이 그는 커다란 냉장고를 제 자리에 한 번에 쓱 집어넣었다.
그리고 냉장고 쓰는 요령을 간단하고도 짧게 설명해 준 뒤.
다시 현관으로 나가서는. 복도에 세워둔 대문을 또 번쩍 들어서 끼운다.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
"아저씨 너무 힘이 세신 것 같아요~"
그렇게 감탄을 하는데도 아저씨는.
"힘이 세다고요?"
그러고는 더이상 말없이 떠났다.
열렸던 대문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러나 나는 잠긴 대문을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믿지 못할 대문이지 않은가.
매번 비밀번호나 스마트 키로만 반응하던 그 단단하던 대문이 옆구리를 가격하자마자 쓰러져 버린 허술한 성벽 같게 느껴졌다. 우리 성 안으로 우리 가족 외는 아무도 들일 수 없던 그 잘난 성문이 그렇게도 뜯어지는구나. 하는 실망감. 배신감 그런 감정까지 어우러져 기분이 아무 묘했다.
그리고.
소설에서나 보던 힘이 센 장사를 실제로 마주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힘을 현란하게 썼으면서도 무덤덤하게 무대를 떠나버린 그 뒤끝에 남은 구경꾼들의 아쉬움 같은 것이었다.
김승옥 씨의 소설 <역사>를 보면 역사(力士)의 후예로 태어난 서씨가 한밤중에 남몰래 동대문의 벽돌을 옮겨 놓음으로써 평소 사용하지 못했던 힘을 발휘하는 장면이 있다. 그 소설에서는 그 서씨의 힘쓰는 장면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생명력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아저씨의 힘쓰는 장면을 보면서 생명력을 느낀 것일까. 이렇게 잊히지 않고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 올려 끼워 맞추던 그 아저씨는 역사(力士)의 후예가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자신이 그 역사((力士)의 가문임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어릴적에,
장터에 나가면 약장수 아저씨들이 나와서 우람한 근육을 뽐내며 철사줄로 이어진 무거운 타이어를 몇 개씩 끌어당길 때. 온몸의 힘을 끌어 쓰느라 근육이 터질 것 같고. 얼굴이 붉을 대로 붉어져.
제발 그 타이어가 빨리 움직여서 그 나이 든 아저씨의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 빨리 사라지기를 고대했던. 그런 힘자랑이 아니라.
저렇듯이. 일상에서. 자신의 힘을 힘들이지 않고 쓰는 그 냉장고 배달 아저씨야 말로 현대판 헤라클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