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흰 눈 한 컵 같은

by 미셸 오
첫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이 어둑하여 블라인드를 걷어내니 눈발이 펄펄 날린다.

바깥은 이미 하얗게 변해있었다. 잠시 내 마음 속에서도 눈이 내리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래서 잠시 침묵.

버스가 지체되고 있다는 문자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해가 비쳐든 곳에는 흔적도 없이 눈이 사라졌다.


저녁에 수업을 마친 후 남학생들이 우르르 옆 강의실에서 나왔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예비고 학생들이다. 그중 한 명이


"선생님 선물이 있어요. 냉장고에 넣어두었어요." 그런다.


"무슨 선물? 가져와봐."


음료수라도 한 병 사두었는가 했는데 그 남학생이 내민 것은 뜻밖에도 종이컵에 담긴 흰 눈이었다!

이제 녹아서 팥빙수의 얼음 알갱이처럼 되어가는 그 눈 한 컵을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샘. 눈 선물은 처음 받아보셨죠?"


그렇다. 눈 선물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응 고마워~"


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가끔 짓궂은 이 남학생이 눈을 컵에 떠가지고 온 이유를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길가 흙바닥에서 떠왔는지 아래는 마른 가지와 흙이 섞인 게 보인다. 그 나뭇가지로 눈을 쑤셔보니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음... 생생한 자연의 소리다.

어쩌면 이 학생은 길을 가다가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 한 컵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빨리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그것을 컵에 담고 왔고 녹지 않게 냉장고에 넣어두었을 테지. 아니면 정말 내게 주려고? 어쨌든 좋다.

나는 '눈 한 컵을 받았다'는 그것에 의미를 두기로 하였다.

요즘 나는 이 작은 소소함을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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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가 학생들과 부대낀 삶도 20년이 넘었다.

어쩌면 학원가에서는 장인이라고 할 만한데. 나는 아직 장인이라는 것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 나이에 와서 내게 남은 것은 건강상의 문제와 무기력함이다.

나만 그럴까.

이 세상의 많은 전문가들이 그들의 장기를 제대로 키우기나 했을까. 거대한 회사의 시스템 속에서 힘들게 부대끼며 살다가 정말 대접받아야 할 나이에 쫓겨나거나 그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현실에서 무기력함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이롭다.


그래서 그 어느것도 나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그 시점에서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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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동차와 결별하였다.

처음에는 이 곳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매우 어색하고 불편했다.

정류장의 가건물도 없고 신호대기판만 있는 좁은 거리에서 내가 코트 깃을 세우고 한없이 버스가 나타나길 기다리노라면, 수많은 승용차들이 내 옆을 잘난척하며 지나갔다.

나처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이 드신 할머니이거나 가방을 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버스를 한 대 놓치고 시간이 더 지체되면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와 다시 차를 가지고 나올까 하는 갈등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는 곳 근처에는 마침 사거리 신호대기가 있어서 줄줄이 사탕 같은 정차한 승용차 안의 사람들이 보내는 무심한 시선을 일부러 외면하여야 했고.

어쩔 때는 비싼 외제차가 찻길에 몸을 납작 엎드린 체로 부르릉 요란한 소리를 내면 지나칠 때 입속으로 솔직히 욕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좁은 길에서 저렇듯이 속력을 낼 것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내가 탈 버스는 십오 분에 한 대씩 왔다.

버스를 외면하고 살았던 날들 동안 변한 것은 버스 카드와 승강구였는데 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넓직한 승강구를 통해 하차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했다.

한 번은,

아파트 자동 키와 버스 키를 동시에 휴대용 지갑에 넣었다가 버스 카드인식기의 '카드는 한 개만 사용해달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차할 때마다 버스 문턱이 너무 높아서 내릴 때마다 다리를 길게 뻗어야 했다. 통이 좁은 긴 코트를 입었다면 분명히 다리를 적당히 찢지 못해 길바닥에 넘어질 것이 뻔한.

간혹 계단이 있는 버스도 있었으나 계단 대신 휠체어를 아래로 내리도록 설계된 버스들은 길바닥과의 거리가 멀어 불안했다. 특히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내릴 때는 조마조마했다. 넘어지기 십상인 구조였던 것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라 할지라도 감히 버스 타는 것은 엄두도 못 낼. 불편한 시설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친절한 버스기사들 덕분에 버스 타는 일이 즐거웠던 적도 있다.

승하차시에 늘 인사를 건네던 버스 기사님.

이와 반대로 정류장에 사람이 있는데도 지나쳐 놓고 정류장을 앞질러 가서 사람을 달음박질시키는 심술궂은 아저씨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버스 타는 일에 점차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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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젠 그 버스와도 결별하였다!

정거장으로 치자면 네 정거장 거리였다.

조금씩 산책하는 마음으로 일찍 집을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을 걸었더니 몸과 마음이 무척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처음 3일간은 발바닥이 아팠고 허리도 욱신거렸다. 그러나 하루 이틀 걷다 보니 내가 걷는 길 위에서 만나는 소소한 즐거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 옆 단독주택에서는 십여 마리의 오골계가 매일 새끼들과 먹이를 쪼아 먹는 것을 구경할 수 있고.

그것들이 알을 낳았다고 고함을 꽥꽥 지르는 것도 만날 수 있다. 얼마나 요란스럽게 울어대는지

안주인이 마당으로 나와서는


"아까 알을 낳았는데 또 낳았어?"


그러고는 알을 찾아다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곤 한다.

어느 고깃집 앞에서 귀여운 고양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몸을 발랑 뒤집으며 애교를 부리는 것도 보고.

갓 구운 빵집에서 나오는 빵 냄새를 맡으며 걷는다.

산책길에 나온 요크셔테리어의 요염한 엉덩이를 볼때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가는 남자아이와 부딪힐 뻔 하지만 살짝 피해가기도 하고. 원두커피를 잘 만든다는 커피 가게도 발견할 수 있었다.

자꾸 지나치면서 거리에서 양말을 파는 젊은 여인과도 얼굴이 익숙해져. 그녀에게 양말을 사면 늘 한 개를 덤으로 얹어준다.


걷기 시작하면서. 내 삶도 이렇게 속도를 줄이며 그동안 지나쳤던 많은 소중한 것들과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늘 걷다 보니 점점 더 많이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내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처음에.

스마트 폰에서 건강 측정을 할 때 내 걷기 수준은 완전 초보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평균치를 뛰어넘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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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을 되씹기에는 걷는 것보다 좋은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산책하는 기분. 천천히 걷기.

그런 나의 행위를 통해. 나는 늘 불안해하면서 성급하게 살아왔던 삶을 반성했다.

나는 돈을 빨리 벌고 싶었고. 그 이유는 경제적인 안정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제적 여유가 찾아왔을 때도 나는 불안했고 그 불안함을 소비하며 메워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늘 여유가 없었다.

그때. 잠깐 빠르게 달리던 차에서 내려.

산책하듯이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점검하고.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말 것을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나, 쉼 없는 삶이 가져다준 것은. 건강의 이상이었다. 시력도 급격히 나빠졌고. 목 디스크에 어깨 통증에 이명에 이석증 그리고 어지럼증을 앓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시력이 나쁘다. 아니 이대로 지속되거나 더 나빠지겠지만. 이제 내 건강을 망치면서까지 경쟁적인 삶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 학원가에 남아 있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그 아이들에게 잘 전달해서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얻고 국어에 자신감을 얻는 그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얻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을 위해 일을 하였다면 현재는 내 직업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산책하듯이 여유 있게 지내는 것. 소소하고 작지만 내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늘 잊지않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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