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커피점이 아주 많다.
커피가게들이 다닥다닥 줄지어 선 곳 앞에는 하천이 길게 이어져 흐르고 그 하천 주변에는 산책로가 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지붕의 색이며 집모양들이 하나같이 다 예쁘고 깨끗한 데다 한적한 느낌마저 들어서 유럽의 한 동네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일 년이 흐른 후 이 아름다운 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실 이사 온 후로는 바로 직장을 갖게 되어 종일 바쁘게 긴장 속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가하게 커피가게를 들르거나 산책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있어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직장을 그만둔 첫 3일간은 잠을 충분히 자고 한껏 게으름을 피웠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 미루었던 이명과 시력저하에 대한 진단도 서울까지 가서 받고 왔다. 의사로부터 치료가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완치될 것 같다.
수업이 없는 평일 낮이면 아파트 바로 아래에 있는 하천 주변을 산책하곤 한다. 그리고 그동안 눈여겨봐 두었던 카페도 들어가 여러 가지 커피도 마셔보고 길게 이어진 산책길도 두어 시간씩 걷다가 온다.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꽝꽝 얼었던 하천에 이제는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산책로 주변에 심어진 산수유나무에도 노란 꽃이 앙증맞게 피어났다. 오리들이 새끼를 낳았나? 새끼 오리들이 많이 보인다.
마침 집에 원두커피가 떨어져서 근처 원두 볶는 가게에 들렀다.
당일 볶은 원두는 없고. 주인은 시험 삼아 볶아둔 것이라며 에티오피아 코차례 원두를 가리켰다.
100그램에 5000원에 가져가라 한다. 나는 그것을 500그램에 이만 원을 주고 사기로 한다.
주인은 아프리카에 원두를 구하러 갔다가 화요일에 온다는 것이다.
인상 좋은 주인은 원두커피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매일 원두커피 향에 젖어 사는 주인이 부럽다.
사실 이 커피점은 이사 온 지 석 달이 다 되어 갈 무렵에 발견했다.
가게에 들어서면 로스팅 기계 앞에 선 주인을 자주 볼 수 있고. 그날 볶은 원두를 직접 살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주인과 마주 보게 해 둔 긴 원목 탁자인데.
커피를 주문 후 주인이 원두를 갈고 또 직접 드립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커피잔을 선택해서 마실 수 있도록 각양각색의 이국의 커피잔이 주인과 손님 사이에 진열되어 있는 데 나는 특히 물방울무늬 무늬가 있는 커피잔을 좋아한다.
주인이 노란 종이봉투에 담아준 에티오피아 원두 500그램을 가슴에 품고 집에 오는 길.
가슴에서 커피 향이 솔솔 피어오르는 것이 기분을 설레게 한다.
집에 와서 원두커피를 갈아 뜨거운 물로 내리니 몽글몽글한 커피 빵이 피어오른다.
아..... 너무 맛있다.
원두커피를 갈아서 직접 드립해 먹은 지가 십 년.
그전에는 믹스커피를 먹었고 꽤 즐겼었다.
믹스커피는 오후 늦게부터 시작하는 학원 수업시간에 졸음을 물리쳐 주기도 하는 가장 강력한 각성제였으며
또 겨울에 따끈따끈한 커피가 담긴 컵의 촉감은 들뜬 마음도 가라앉혀 주었다.
길을 걷다가 자판기를 그냥 지나쳐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동전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종이컵에 쪼르륵 떨어지던 소리 외 커피와 프림의 뒤섞일 때의 그 갈색 빛깔들이 좋았다. 그리고 진동하는 커피 향으로 후각을 충족하고 마지막에 입안에 감기던 그 달달한 맛까지. 어쩌면 그것은 어릴 적 자주 먹던 달고나 맛이라는 착각까지 하였다.
하물며 20년 전, 외국에 여행을 갔을 때도 믹스커피 맛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한국에만 있던 그 커피믹스가 외국에 있을 리 없었건만. 커피는 이국의 식품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믹스커피는 외국산인 줄 착각했던 것이다.
그처럼 당시 믹스커피야말로 나의 오감을 충족시켜주었던 최고 음료였던 것인데.
어느 날 누군가가 원두커피를 나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처음 원두커피는 그랬다.
블랙의 그 새카만 색은 예전의 그 아름다운 믹스커피의 갈색에도 미치지 못했고 향은 좋았으나 첫맛은 씁쓸하였다. 게다가 설탕을 전혀 넣지 않은 커피라니. 반도 못 먹고 내려놓았다.
그 후, 커피 프림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는 원두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 시작했다.
원두커피의 맛보다는 원두가 갈릴 때 그 향에 반해서 열심히 핸드밀로 원두를 갈았다.
우리 가족들이 서서히 원두커피맛에 길들여져 갈 때도 아버지만은 끝까지 믹스커피를 드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고혈압 진단을 받게 되었던 날 이후였던가 보다.
당신도 원두커피에 설탕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원두커피에 설탕을 넣고 그 맛을 알게 되었던 그즈음에 우리는 원두에 설탕을 넣지 않게 되었다.
진정한 원두커피의 맛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나는 원두커피의 섬세한 맛을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 믹스커피만 고집하던 아버지는 요즘 전화로 이렇게 주문한다. 물론 물만 끓이면되는 더치커피다.
"커피가 다 떨어져 간다. 내 돈 줄테니까. 커피 두어 병 주문해다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 원두커피를 마시던 한 친구가
"가끔은 자판기 프림 커피가 땡겨"
라면서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타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덩달아 마셔보았는데 입안에 넣자마자 뱉어버렸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강력한 프림의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두커피를 알기 전에는 왜 그 맛없는 그 맛을 느끼지 못하였던 것일까?
원두커피도 나무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다는 말들도 가끔 듣지만.
커피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료라고 생각한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