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많이 춥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간밤 꿈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손이 동상에 걸린 것처럼 상해 있었다. 꿈을 믿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괜히 혼자 계신
아버지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아버지는 혼자서 잘 사시는 분이니 괜찮아.
라고 지나쳐버렸다.
나는 가끔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걱정은 되지만 전화하는 것이 불편할 때 딸아이를 다그치곤 한다.
오늘도
"할아버지께 전화했어?"
"아니~"
딸은 시큰둥하게 받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하라고 했잖아?"
"그저께 문자 했어~"
"그래도 지금 해봐"
딸은 마지못해 문자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답이 곧장 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손녀의 문자에 "ㅇㅋ"라고 답을 잘 하는데 이럴 때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할 수없이 전화를 건다.
아버지는 뭘 하다 왔는지 숨이 가쁜 목소리다.
"날이 좀 풀려서 유리창을 닦고 있다~ 추운데 뜨뜻하게 하고들 지내냐?"
"아이고 이렇게 추운 날 유리창은 왜 닦고 그러세요?"
"날이 좀 풀렸길래..........."
"그래도 날이 따뜻해지면 닦고 그만 하세요"
나는 어느덧 불퉁한 목소리가 된다. 그런데 아버지의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어딘가 좀 이상하다.
"그런데 아버지... 목소리가 바람이 새는 것처럼.. 이상해요"
"아~앞니가 며칠 전에 부러져 버렸어"
"................................."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금 아버지는 임플란트며 레진이며 몇 달 동안 이빨을 치료 중인데 생각지 않았던 앞 니 한 개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돌아오는 화요일에 이빨을 보이고 치료를 한다고 하는데 갑자기 답답해 온다.
"이빨 치료비를 마련해 볼 테니 빨리 점검을 받아보세요."
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후 괜히 눈물이 난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이번 일을 두고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영감탱이... 이빨 빠지면 틀니하고 살아요. 자식들 부담 주지 말고~"
그러나 나는 앞니가 빠져 휑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어떡하든 이빨 비용을 감당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울컥해졌던 것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혼자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었을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도록 자식에게 의존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월남전을 다녀오신 분이고 유교적인 사고로 가득한 분이셨다.
중학교 때까지 서당을 다니면서 배운 것이 유교사상이니.
늘 엄마를 외롭고 힘들게 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식들에게 박혀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어려서는 무서운 아버지요 커서는 원망스럽기만 한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늙고 홀로 남겨지고 자식들 앞에 한없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 마음대로 아버지를 원망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내 주변의 내 나이 또래의 부모님들 중. 거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요. 어머니는 희생만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정말 아주 가끔은,
자상한 아버지를 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우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런 아버지 옆에 있는 엄마들은 우리 엄마들처럼 희생적이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게 살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미역공장에 미역줄기를 따러 가고 없을 때
그 자상한 남편을 둔 아내는 집에서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우유와 달걀과 밀가루를 섞고는 흰 눈 같은 빵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주곤 했다.
그 부드러운 빵맛은 내가 누리지 못한 아버지의 자상함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 몇십 년이 흐른 후
늘 무서웠던 아버지가 옛날에 몰랐던 그 부드러운 빵을 우리에게 내밀고 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에 제 철에 나는 새우며 생선을 씻어 장만하고 말리고 한 것들을 잔뜩 싸와서는 딸의 냉장고를 가득 채워 준 것처럼.
아버지가 이제 엄마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따라 한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딸 집에 올 때마다, 혼자서 새벽시장 가서 사서 장만했을 새우며 생선이며 자른 대파 얼린 것과 마늘 빻아 얼린 것들을 잔뜩 준비해 와서 냉동고에 넣으라고 한다.
김치도 얻었다면서 한통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라고 한다.
"너희가 이사 온 후 회를 못 먹었지?"
그러면서 고추장과 회를 잔뜩 사 와서는 챙겨 먹이려고 한다.
우린, 아버지의 그 빵이 익숙하지 않아 자꾸 가슴이 먹먹해 체하려고 한다.
그래서인가. 눈물까지 위로 치고 올라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