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by 미셸 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허리가 욱신거렸고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베란다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역시나, 오늘도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세상을 둘렀다.

가슴이 답답하다.


세수를 하려고 세면기 앞에 서서 거울을 보다가 기분이 나빠져 버렸다.

흰머리,

하얗고도 뻣뻣하며 또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 한 올이 내 왼뺨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강** 장관처럼 머리가 희어져도 단발을 하겠어. 흰머리도 멋지지 않아?"

라고 했던 나는 없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달라붙은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을 가려내어 뽑아버렸다. 번뜩이는 흰 머리카락이 내 얼굴에 들러붙은 것을 보는 순간 나이들어도 흰머리 단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청소를 하고 어제 남긴 짜장으로 밥을 먹고 낮에는 손님이 와서 스파게티를 만들고.

이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지인의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주다 보니 훌쩍 오후 시간이 되었다.


손님이 간 뒤 쓰레기를 분리한 후 재활용 쓰레기 장으로 가져가는데.

쓰레기장 바로 앞에서 어떤 젊은 아빠와 아이가 야구공을 던지고 있다. 야구공이 공중에서 바람따라

휘어져 날아가는 것 같다.


햇볕은 기운이 좀 꺾였으나 바람이 낮보다 서늘해졌다.

재활용장 오른편으로 중학교 남학생 대여섯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아파트 1층 문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몇몇은 셔츠의 앞 단추를 풀어 점퍼처럼 걸쳤다. 어느 학교 인지 교복이 멋지다.

나도 그 아이들이 들어간 1층 자동문 앞에 선다. 그 아이들 중 나의 학생이 될 아이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 있었다. 우리 아파트 현관문은 산을 향해 있어서 그 곳으로부터 바람이 많이 불어 온다. 그러므로 미세먼지와 함께 소나무의 노란 꽃가루도 심하다.


한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들어섰다.


"옆집 이모잖아. 인사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아이 엄마.

남자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나를 멀뚱하니 본다. 5살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오동통하니 살이 오른 딸아이는 유모차에 앉아 나를 보는데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정말 예쁘도 귀엽게 생긴 아기다.

뻥튀기를 손에 들었는데 반쯤 남았다. 울었던 모양인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이.

아이들의 눈물은 어쩜 저렇게 투명할까. 흰 복숭아처럼 보송한 피부를 하고서.

그들은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렸다.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종이 박스를 버리러 갔던 딸애가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딸이 걸친 롱 점퍼 끝이 바람에 펄럭인다. 다섯 살이었던 딸은 이제 20 대다. 화분에 심은 금전수가 자고 일어나면 싹이 나고 일주일 만에 쑥 자라서 어른이 되듯이. 언제 저렇게 컸을까.


특별히 살 것도 없는데 집에 들어가기 그래서

집 근처 마트로 딸애와 걸어간다.


그런데 마트 6주년 기념 세일이란다. 사람들이 보통 때보다 배나 많다.

50프로 세일.

생각지도 않은 것들을 많이 샀다.

어제 50프로 세일가로 산 아이스크림이 내일은 더 싸져서 한 통에 1990원이라고 써져있다. 딸에게 내일 또 오자고 했다.

딸은 사지 말라고 했지만 (딸은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산딸기 두 팩 하고 블루베리 두 팩을 기어이 장바구니에 올렸다.


"여기 마트는 마케팅을 잘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말이다. 확실히 대형마트보다 실속이 많다.


매장 한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 가보니. 고추 한 봉지에 무조건 천 원이란다. 사람들은 비닐에 맘껏 담은 고추 한 봉지에 기뻐한다. 손바닥만 한 비닐에 고봉밥처럼 고추를 잔뜩 담은 어떤 할머니는 소리 내어 웃는다. 옆에서 고추를 고르던 사람들도 그 고추 봉지를 보며 덩달아 웃었다. 봉지 안 고추보다 봉지 바깥에 나팔꽃처럼 가득 담긴 고추들이 봉지에 발만 담근 꼴이다. 1 봉지를 기술 좋게 담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한 봉지를 만들었다. 비닐에 고추를 꾸겨 넣으니 제법 많이 들어간다.

마트 계산대에서는 고봉밥처럼 가득 담긴 고추를 한 봉지로 계산해 준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머리가 무겁고 귀가 아파서 잠시 누웠다.



귀의 멍멍함이 점차 사그라드는가 싶다.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불현듯 일어나는 생각 하나....엄마였다.

오늘. 벌써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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