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노트

#변신 인형

왕멍

by 미셸 오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인형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인형처럼 그로테스크했다.

책의 중반쯤 읽어나가면 그 인형이 얼굴과 몸통과 하체를 마음대로 바꾸는 장난감 인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변신 인형이.

주인공 니우청이 그의 아들에게 선물한 그 인형이 왜 책의 제목이 되었던 것일까.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펄벅의 <대지>를. 루쉰의 <아큐정전>을. 중국 영화 <홍등>을 동시에 떠올렸다.

무한한 넓은 땅에서 살아가는 중국인이 대륙적 기질을 가진다고들 말하지만.

무엇이 그들의 대륙적 기질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서술기법은 다양하다.

장별로 전지적 시점으로도 1인칭 시점으로도 나타난다.

현재 언어학 전공인 대학교수 니자허가 그의 아버지 니우청을. 그의 어머니와 그의 어린 시절과 친척들을 회상하는 구조다. 그래서 1장 이후부터는 과거 회상이 이어진다.


각 장마다 작가, 니자허의 아버지 니우청, 니자허, 그의 어머니 징이, 과부 이모 징전, 그의 외할머니.. 그의 누나 니핑 등 개인의 삶과 생각들이 차례로 서술된다.

그것은 전체 화면 속의 인물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이다가 각 사람의 내면을 비춰주는 방식과도 같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인물들 개인의 고통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중심인물은 니우청인데. 그의 아들 니자허가 성인이 되어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이끈다. 니자허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번역한 전형준 씨는 이 소설 말미에서 직접 작가를 만났다고 적고 있다. 즉 살아 있다고 믿었던 소설 속 인물 니자허. 바로 자우웨이를 직접 만난 후 이 소설을 번역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퍽 흥미로웠다.

소설 속의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흥분에 가까울 것이라 짐작된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특히 자랑스러울 것 없는 가족사를 끄집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족의 이야기는 당대 중국의 사회. 즉 식민지 반봉건 사회로부터 사회주의 중국의 사회로 까지 이어지는 시대성이 한 인간을 한 가족을 어떻게 고통에 이르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한 개인의 아픔은 사회 그리고 역사 속의 아픔으로 확대되어 다가온다.


니우청의 할아버지는 전족 반대 운동을 벌였던 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혁명을 두려워하고. 그의 아버진 아편중독자였다. 니우청의 어머니는 혁명보다는 아편이 낫다고 여겨 어린 니우청에게 아편을 피우게 했는데 아들은 설사병이 걸리고 밭장다리로 걷는 능력을 상실하자 그 스스로 혁명의 의지로 일어나 아편을 끊고 다시 일어섰다.


어려서부터 니우청은 총기가 남달랐고 17세에 서양식 학교를 다닌 후 제사를 미신으로 여겼으며 전족을 반대했다. 그리고 자유연애의 관념을 알았다. 니우청이 결혼 조건으로 전족을 하지 않은 여자를 원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의 아내 징은 해방각(전족을 했다가 푼)이었다. 니우청과 같이 대학을 다녔던 아내였으나 징은 결혼 후 대학을 그만두고 친정집의 재산으로 남편을 유학 보낸다. 그러나 서양의 화려한 문물을 접하고 온 니우청은 중국인의 습성을 보여주는 아내 징이를 무시한다. 니우청은 중국인의 불결함과 봉건적 의식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는 중국은 병적 상태를 미(美)로 보고 억압받고 학대받는 것을 미로 보는 특유의 관념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인은 전족을 좋아하고 분재도 병든 매화를 좋아하고 페병걸린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은 문명화되기를 바란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 세대의 짐과 고통이 다음 세대에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끼 밥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부양비를 주기보다는 목욕을 우선하고 아이에게 줄 서양식 장난감을 사는 니우청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그는 서양식으로 목욕을 하고 서양식으로 사고를 하는 것이 곧 진보인 것처럼 생각한다.


니우청은 그가 존경하는 두 공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니우청 "중국인의 결점은 개념을 사용하지 못하고 논리도 따지지 않는다"


두공 "그렇다면 지금 최대의 개념은 무엇일까... 전쟁. 베이징이 일본에 점령당한 현실이지... 일할 사람이고 일할 시기인데 일할 세상이 아니지"




두공은 철저한 역사의식 없이 중국인을 경멸하는 니우청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니우청은 중국인의 봉건적 의식에 사로잡힘과 베이징이 일본에 점령당한 그 현실을 인식하여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서양보다 진보하지 못한 중국인의 낙후된 인식과 습성에만 집착하여 경멸하고 무시했다. 중국 여자들이 온갖 학대와 불행과 억압을 겪는 것을 알면서도 니우청 자신도 한 여자인 아내를 불행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징이의 언니 징전이 17에 결혼해 18세에 과부가 되어 열녀 노릇을 하는 것도 어리석게만 여겼다.


니우청은 그렇다.

그는 중국문명의 정화를 바란다. 민주적인 인관관계에 빛이 비치길 바란다. 개성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길 바란다. 그러나 항일도 친일도 아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그가 이혼도 하지 못하지만 아내 징이와 살려고도 않는다. 서양의 문물을 동경하지만 중국을 떠나지도 못하고 그 스스로 중국의 나쁜 풍속을 벗어난 것도 아니다. 그는 기꺼이 중국사람도 못 되는 것이다.

다만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에 고통을 느낄 뿐이며 지금과는 다른 시대가 저절로 오기 바랄 뿐이다. 헌 집에 무너지고 새 집이 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니우청과 그의 가족이 살던 집이 폭우로 붕괴되었을 때 그는 생각한다.


'그제야 어두운 방에 빛이 들어왔다. 온 세상이 눈을 찌르는 하얀빛이 가득 찼고 여름의 태양은 그토록 남아돌았고 흘러넘쳤다'


그가 진정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은 중국의 낙후된 문명 바로 그것이었고. 사각형으로 둘러쳐진 그의 집(중국의 전통가옥)이 무너져야 중국에 새로운 빛이 넘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 후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흐름 속에서도 발을 담가 보기는 했으나 그가 분명한 이념이나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결국 그는 가장의 책임을 못 지고 가족들에게 소외되어 자살을 했으나 다시 살았고 그 이후 이혼을 하였고 나중에 늙고 병이 들어서는 다시 자식들을 찾았다.


이 소설의 19장에 가면 서술의 시점이 너에게로 향한다. 여기서 너는 니우청의 아들 니자허로 보인다.

즉 작가이기도 할 것이다.


성인이 된 그는

어렸을 때 그토록 싫어했던, 가족을 등한시한 아버지를. 봉건적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던 그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할머니를 어린 시절과는 달리 안타깝게 연민의 태도로 바라본다.

한 시대를 살아가며 인간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그 특별한 시대의 흐름을 탔던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던 것이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서술자의 변신 인형에 관한 독백에서 알 수 있다.


'변신 인형. 그 고정되지 않은 형체와 그림자. 정신과 감정. 그것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일찍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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