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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26. 2018

#느림

밀란 쿤데라

오래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이 등장했을 때였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철학적인 제목에 끌려서. 쿤데라의 책을 샀던 게.

사실 책을 다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후 이 작가의 '사랑' '느림' 까지 샀으니 아마도 읽은 것 같은데

기록을 남기지 않아 잘 모르겠다. 너무 오래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도 처음 접한 쿤데라의 책은 어려웠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책장에 꽂혔던 많은 책들을 기증하거나 버리거나 하면서도 밀란 쿤데라의 책들은 남겨두었다.

이번에. 책장에 남은 책들 중 미처 읽지 않은 책들을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책장을 넘긴 것이

바로 '느림'이었다.

벌써 책장이 누렇게 변해버렸다. 그때 책의 삼분의 일은 읽고 그만둔 체 그대로다.

다른 장편 소설들에 비해 턱없이 얇지만 정말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책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여기저기서 끊긴다.




나는 액자식으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즉 책의 내용을 크게 삼등분하는 것이다.


1. 처음은 성으로 차를 타고 가는 길.

2. 중간은 성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하룻밤 사건들과 이야기들.

3. 마지막에서는 18세기 젊은 기사와의 만남과 이별.



이제 그 세 개로 나눈 것들을 구체화해본다.

1. 성에서 하룻밤을 묵기 위해 나와 아내는 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길에서 속도에만 급급하는 사람들에게 아내 베라의 말,


"50분마다 한 사람씩 프랑스의 도로 위에서 죽어요........ 어째서 운전석에 앉으면 두려움을 모르게 되는 걸까요?"


이때 나는 서술자로서 대답한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중략)..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이때 성에 도착하기 전에 끼어드는 2개의 이야기가 삽화처럼 끼어든다.

비방 드농의 단편 <내일은 없다>와 ,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하여.

--------그리고 성에 도착 (이후부터는 소설의 가운데로 접어든다)



2. 성에 도착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서로 뒤엉킨다. 그것은 마치 다섯 개의 긴 천을 잘라 흩어놓은 뒤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이어 붙인 조각보와 같다. 그러므로 차례로 줄거리가 이어지던 기존의 책읽로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저녁을 먹고 아내는 자러 간다. 이때 아내의 잠은 이야기 전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정치인들(베르크와 뒤베르크). 그들의 아프리카의 원조나 에이즈 환자들을 찾아가는 것은 카메라를 위해서이다.

- 퐁트벵(역사학자)과  벵상(곤충학자)의 대화. 퐁트벵은 정치인들의 대부분이 춤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권력보다는 명예를 갈구한다는 점에서 춤꾼이다.


아내가 자는 것을 확인 후,


- 나의 서술-'T부인과 기사의 사랑'(비방 드농의 소설 속 이야기)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비방 드농이 살아있던 시대는 미지의 대중을 갈구하는 오늘날(정치인들처럼)과 달리 관심을 가졌던 대상이 개인이 알고 지냈던 일단의 작은 무리였다.


-임마쿨라타와 베르크-베르크는 임마쿨라타라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는 베르크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착각한다. 이 부분에서 선택에 대한 서술-"우리 모두는 저마다 너무나 평범한 삶의 저열함을 다소간 괴로워하며 이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고양시키고자 한다."

 선택되었다는 감정은 예를 들면 모든 연애관계. 즉 사랑에서 나타난다. 자신이 선택된 사람임을 원하는 자, 바로 여기서 사진술의 발명의 토대가 이루어진다. 즉 스타들. 춤꾼들. 유명인사들은 모두에게 보이고 모두에게 찬미받으며 또한 모두에게 이를 수 없게 한다. 유명 인사들에 대한 숭배적 고착에 의해 스스로 선택된 자로 여기는 자는 자신이 비범하다고 여기게 됨으로 많은 범속한 것들(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이웃들. 학교 동료들. 파트너)에 거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게 된다.

 

- 학술대회장: 프랑스 곤충학자들과 한 명의 체코 곤충학자의 긍지. 베르크와 체코 학자와의 대화.

-베르크가 임마쿨라타에 퍼붓는 저속한 욕설.

-나(서술자)의 똥구멍에 대한 고찰.

-벵상과 쥘리의 수영장에서의 사랑의 속삭임.

-베르크에게 모욕을 당한 임마쿨라타가 수영장에 뛰어들고 카메라맨은 그녀를 지켜본다.

 -벵상은 그의 욕망을 충족하기도 전에 쥘리는 도망갔고 그는 그녀를 찾지 못했다.


이 중간부 마지막에 벵상은 이렇게 말한다.


'어서 빨리 이 밤을, 이 잡친 하룻밤을 잊어버리는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는 속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이 오토바이 위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다. 그 자신마저도 잊어버릴 것이다.


*기억해야 할 단어-속도와 망각. 똥구멍.임마쿨라타.성. 아내의 잠. 깨어남. 잠. 깨어남.사드. 비방드농. 에피쿠로스의 쾌락. 18세기. 퐁트벵. 벵상. 곤충학자. 정치인 베르크.오토바이. 기사와T부인.카메라. 마차


3. 마지막 결말부

 베라와 나는 성을 떠나는 차에 오른다. 그때 내가 말한다.


나-"난 그(벵상)가 너무 빨리 몰까 봐(오토바이를) 두려워. 정말 그가 염려되는군"

베라-"빨리 모는 걸 좋아하나 봐. 그도?"

나-"늘 그런 거 아냐. 하지만 오늘, 그는 미친놈처럼 몰아 댈 거야."

베라-"이 성은 모두 귀신 들렸어. 모든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다줄 거야. 제발, 어서 시동 걸어요."

나-"잠깐만 기다려"

나는  마차를 타러 가는 기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나는 마차 쪽으로 천천히 가는 나의 기사를 좀 더 보고 싶다. 그의 걸음걸이와 리듬을 음미해 보고 싶다. 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의 걸음걸이들은 느려진다. 저 느림 안에서, 나는 행복의 어떤 징조를 알아보는 듯하다.'


나는 마차에 탄 기사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마음속으로 한다.


'제발, 친구여, 행복하게나. 난 행복할 수 있는 자네의 능력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달려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다네'


마차는 안갯속으로 사라져 갔고 나는 시동을 건다.

                                                (끝)



책을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인물들의 이름을 적고 관계도를 그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한껏 게을러진 내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서 관두었다. 다만 한 번 읽었을 때보다는 훨씬 이해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인들이 체코인들에 대하여 가진 편견에 맞서는 내용도 있었고(체코 곤충학자의 말을 빌려)

속도만 내는 현대를 비판하며 예전의 낭만적인 느림을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였으며(서술자 나의 말)

선택받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인간이 선택한 카메라. 그로 인해 나타난 위선. 보여주기. 스타와 정치인들에 대한 숭배와 공동체 의식의 파괴 등도 보았다.(퐁트벵의 말을 빌려)

이런 이야기들이 서술자 나의 아내 베라가 잠이 들고 깨고 다시 잠이 들고 깨는 그 사이사이에 있다.

읽다가 문득 '몽자류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 외 다른 것들도 있지만 직접 책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좋을 듯하여 그만 적는다.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느림이었지만 짧은 소설 안에서 많은 숨겨진 내용들이 있어서 생각할 것이 많았던 책이었다. 그래도 한 번 더 읽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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