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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23. 2018

 #랩걸

호프 자런의 <랩 걸>


몬스테라 화분을 사고 싶었다.

넓고 커다란 잎이 갈가리 찢어진 종이처럼. 잎 한 개가 주는 초록의 힘이 크게 느껴졌던 식물이었다.  열심히 화분을 사다 나르던 지난날에는 분명 흔치 않던 종이다. 근처 꽃집에 들렀더니  예쁜 화분에 심긴 무릎까지 오는 것이 5만 원이다.



그래서 좀 멀리 떨어진 식물원을 찾아 사진만 보고 가격은 절반도 안되는 몬스테라를 전화로 주문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식물원 주인이 배달한 몬스테라는 사진과는 달리 잎이 축 처지고 누렇게 바래고 잎이 찢기지 않은 것까지 섞여 미덥지가 않다. 게다가 파란색 플라스틱 화분에 담겨 더 초라해 보인다.

이미 돈도 입금했고 배달까지 완료한 상황이라 되돌리지는 못할 일. 망설이는 사이에 식물원 주인은 그 화분을 현관문 안으로 들이고는 사라져 버렸다. 푸른색의 넓은 이파리들을 보면서 그 잎에 가득한 생기를 느끼려던 나의 기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긴 줄기가 이리저리 질서없이 늘어진데다 어떤 잎들은 보기싫게 오그라져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관문을 가로 막고 있으니 일단은 옆으로 치워야 했다. 신발을 끌고 현관앞까지 가서 그것을 들어야 했을 것을 손과 다리를 뻗어 잡아 끌었다.  순간 오른쪽 무릎의 인대가 늘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와의 첫 만남에서 몬스테라는 그렇게 고통을 주었다.  못생긴 것이 보기 싫어 화장실 욕 조위에 갖다 놓았다.

그런데 무릎의 인대가 완치될 무렵, 보기 싫게 둘둘 말렸던 잎들이 손가락을 펴듯 연둣빛으로 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싱싱한 연둣빛의 넓적한 몬스테라 잎이었다!

몇 개의 누렇게 변색한 것들과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어느덧 아래 줄기에서 생강빛의 뿌리가 슬며시 발을 내 것도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새롭게 탄생한 잎들 위주로 보기 싫은 잎들은 쳐냈을텐데 그냥 두기를 잘 한 것 같다.


'초록색 이파리 한 개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책, 그것은 바로


호프 자런의  <랩걸>이었다.


"저는 제목의 의미가 과학실 여자라는 뜻이라는 것을 먼저 찾아보았어요. 예전에 숲 해설사를 하기 위해 생태사 자격증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수많은 나무의 종류는 물론 각기 다른 나무들의 냄새까지도 분별해야 하더군요. 감당 못해 그만둔 적이 있었죠."   -미-


"저는 주인공의 영적 동반자로서의 빌을 주인공 입장에서 바라보았어요. 빌같은 이성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남편은 아니지만 남편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서로의 필요를 알아서 챙겨주고. 편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저는 빌이 나중에 남편이 될 줄 알았는데.. 마지막까지 친구로 남는 것이 좋았어요."                      -남-


"나무들이 환경에 맞추어 자라나는 과정을 보며 먼 후일에 우리 아이들 세대가 살아갈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아이들도 각각의 환경에 맞춰 성장해 갈 테니까요." -영-


"저는 이 책이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씨가 자신의 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 딸에게도 읽히고 쉽고 또 딸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일에 열성을 다하는 멋진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 작가가 한 시간의 강의를 위해 다섯 시간을 공부했다는 그 부분에 공감했거든요. 저 역시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느라 많은 시간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물론 덕분에 제 수학 실력이 많이 늘었구요."  -옥-


         -독서회원들의 <랩걸>후기들중 일부 인용. 2018년. 10월. 전부 가명입니다.-


 <랩걸>은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인생 스토리다. 그러나 절반은 그녀가 관찰하고 연구한 식물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연구하고 발견한 나무의 생애와 유사하다고 책에서 말한다. 그녀가 찾고 연구하고 발견한 녹색 식물들. 나무들에 대한 발견들로부터 그녀가 얻어내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삶도 그들 식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가 과학자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은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타고난 머리와. 그녀에게 주어진 좋은 친구 한 명과 좋은 남편. 물론 그녀도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녀처럼 목표를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향한 불타는 꿈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가정이. 자신의 타고난 두뇌와 성향. 그리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로 인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확률은 보다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한 개의 새 이파리를 위해 나무들이 그토록 애를 쓰고 힘을 들인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싱싱한 초록의 이파리들을 찾아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랩걸>을 읽은 후 과거에 생각 없이 나무 사이에서 손으로 똑똑 떼어내던 수많은 이파리들에 대해 한없는 미안함과 함께 애정이 생겨났던 것이고. 또 생명을 가득 품은 그 초록 이파리들을 내 곁에 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내게 온 것은 뜻밖에도 시련을 견디다 못해 못생겨져 버린 잎들이었으니, 게다가 무릎인대가 늘어져 3주간 한의원 치료는 물론 걸을 때마다 고통을 받아야 했다.


새 잎이 넓게 퍼지던 날,  화장실에 있던 몬스테라는 거실로 나왔다.

멋대로 늘어진 줄기들을 바로 세우고 베란다의 밝은 빛을 쬐어주고 흙이 마를 때마다 수시로 물을 준다.

새로운 환경을 맞이한 그 잎들이 다시 풋풋한 새 잎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보기 싫게 굳어진 잎들은 오래된 나무들의 나이테처럼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스스로 시든 잎을 떨굴 때까지 두고 볼 생각이다. 어쩌면 빳빳하게 굳은 늙은 잎은 새로운 연둣빛

이파리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지금 지독한 몸살을 겪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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