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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Sep 04. 2018

#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올여름 유난히 더웠기에 여름에 읽기에 좋을 만한 제목으로 이 책을 골랐다.


인생의 40고개도 넘기지 않은 젊은 작가의 글이라니.

너무 소설을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총 7편의 단편이 그 어느 것 하나도 빠질 수 없다는 듯 다양한 내용을 뿜어낸다.

읽다가 눈물이 퍽 하고  나올 법도 한데 이상하게 가볍게 다가온다. 작가의 문체 탓일까.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은신가요>

다 잘 썼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나는 이 9편의 작품 중 <침묵의 미래>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지 하는 생각들.


사라져 가는 소수 민족의 언어들이 모여 있는 박물관. 이 곳에는 천에 가까운 소수 민족이 그들의 고유언어를 간직한 채 -언젠가는 사라질 터이지만- 살아가고 있다.

화자는 언어다.    화자인 언어의 주체인 노인은 후두암으로 죽었다.

시대의 끝에는 모든 고유한 언어는 사라지고 중앙의 언어만이 존재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일어난다.


본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각국의 다양한 언어들의 모습...


'어느 부족의 언어는 성조가 수십 개다. 그들은 열대지방에 사는 빨갛고 쭈글쭈글한 멱을 가진 화려한 희귀 새처럼 운다. 이방인의 귀엔 그저 "크, 크헉,흐허, 헉"처럼 들리는 소리가 어떻게 수만 가지 문장으로 확장되는지 ...'  인용 137p


예전에

에스키모인들은 눈의 모양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십 가지가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극한의 추운 날,  눈이 하얗게 덮인 높은 산에 오를 때, 사람들은 크레바스라고 하는 절벽에 빠져 죽는다. 위에 덮인 눈 때문에 절벽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스키모인들은 크레바스에 빠져 죽는 일이 거의 없다. 이유는 그들은  눈을 세세하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키모인들은 우리가 '눈(雪)'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가지로 구분하여 명명할 줄 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땅에 쌓인 눈' '바람에 휘날리는 눈' '바람에 날려 쌓인 눈' 등 '눈'의 명칭들이 20여 가지나 된다고.



마샬 맥루한이 쓴 <미디어의 이해> 중 음성언어에 보면,

'모든 모국어는 세계를 보고 느끼고 세계 속에서 행동하게 하는 그 모국어 특유의 방식을 그 사용자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전기 기술은 말과 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컴퓨터 기술에 의해 세계적 이해와 통일이 이룩된 상태를 약속한다'  되어있다.


이처럼.

현시대에 각 민족의 언어는 다양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일까. 그래서 점차 민족 고유의 문화나 가치관도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하는, 그래서 미래에는 전부 컴퓨터 앞에 앉아 음성기능을 상실한 채 자판기만 두드리며 소통하게 될까.정말.


오늘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이십여 년 전, 중국의 소수민족 언어 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때보다 지금은  더 많은 언어들이 사라졌지 않았을까.  작가도 그곳에 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한 번 가고 싶었다.

이미 사라져 간 언어들 속에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생소한 언어들이 있었을 테니.  나는 그 사라져 간 언어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다.

그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들의 문화도 민족도 영원히 소멸되어 버렸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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