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요즘, 새로 일을 시작한 후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컴퓨터 자료를 찾다가 오래전, 제가 보았던 영화의 감상문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려고 적어두었던 것 같습니다.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려봅니다. 그때의 영화 속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오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카포티와 페리는 너무나 닮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다 간 사람들입니다.
우선 그들의 다른 점은 영화 속의 카포티의 대사처럼 둘이는 같이 살다가 카포티는 앞문으로 나오고 페리는 뒷문으로 나간 것일 뿐인 거지요. 또한 피그말리온의 덫이라고나 할까요.
카포티는 어려서부터 가녀린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불쾌한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인사건이 난 마을의 소녀를 찾아간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그들이다. 나는 문제가 없다. 그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요.
반면에 페리는 좀 달랐습니다.
겨우 오십 달러의 돈을 얻기 위해 세 사람이나 죽였습니다. 그는 인질의 묶인 끈이 아플까 봐서 느슨하게 해 줄 만큼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습니다마는 자신을 무섭게 살인자처럼 쳐다보고 벌벌 떠는 인질 때문에 그는 그것에 충격받아서 칼을 휘둘렀습니다. 페리는 편견의 시선에 자신을 그대로 놓아버린 것입니다.
'그래 네가 본 그대로 보여주겠다.'
사실은 사실은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편견이야말로 살인이고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남들의 시선을 견디는 자기 정립과 자신감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결국 삶의 앞문으로 나가든 뒷문으로 나가든 선택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저는 이 영화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보았습니다. 카포티는 '냉혈한'이라는 제목을 달고 페리의 이야기를 적어나갑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남들이 무서워하는 살인자. 카포티는 페리를 진정 이해하려고 애썼고 진실했습니다. 저는 무섭게 일그러졌던 페리의 얼굴이 서서히 선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가족이 펄쩍 뛸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 페리에 대해 뜨거운 연민이 밀려들었습니다. 카포티의 말대로 그의 페리에 대한 진실은 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겠지요.
페리의 사형 날짜가 결정되었던 날,
페리를 찾아간 그 장면에서 카포티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꼈고 이제 죽을 사람은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두 배우의 연기력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카포티와 페리를 연기한 그들은 진정한 배우였습니다. 마지막에 목에 밧줄이 걸린 페리에게 사형 집행인이 물어봅니다.
"할 말이 없습니까?"
그때 페리가 말합니다.
" 유가족이 왔나요?"
" 아니요, 유가족에게 할 말은 없습니까? "
페리는 순간 당황합니다.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린 겁니다. 정말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가득한 그의 내면에 무슨 할 말이 떠오르겠습니까?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 한 페리는 그렇게 죽습니다.
쉼 없이 주기도문을 외우던 목사의 기도는 사형수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는 믿음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차라리 카포티처럼 페리와 함께 사형대에 같이 올라가 주는 진실함이 더 좋았겠습니다만.
저는 사형 장면을 그렇게 사실적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형 순간 좀 움찔했던 것 같습니다.
페리는 살인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을 갈구했던 불쌍한 영혼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참 잘 만들어진 명작이라 생각합니다. 상업자본을 뿌리로 하는 영화가 판치면서부터 영화 보는 것을 멀리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거대한 들판에 남겨진 한 채의 집'이 담긴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고독함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집 없는 들판과 가로수만 보여준 것은 페리의 죽음을 암시하려던 감독의 의도였을까요.
그러나 그 풍경은 찬 가슴이 아릴 만큼 아름답더군요. 인간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는지요. 저는 이 영화를 본 뒤 신경림의 "갈대"를 떠올렸습니다.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울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영화를 다 본 후 쉽게 잠들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연민이 밀려왔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고요. 그리고 얼마 동안 흐느껴 울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며 영화의 구성이며 대사며 다 좋았습니다. 감독에게도 박수를.
이 글을 쓴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고 2008년 이나 2009년 겨울에 쓴 것 같습니다.
*사진 이미지 출처는 다음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