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는 맨 처음 내게로 중 3 때 왔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참으로 오랜 기간 같이 지내면서 깊은 사제의 정을 쌓아 올렸다. 세상을 살다 보면 짝짜꿍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원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만난 두 남녀 사이에 태어난 딸이어서인가. 가정도 무척 화목해 보였고 본인도 무척 밝고 애교스러웠다.
학교 수업 후 학원이란 수업시간이 늦게 마쳐지는 날이 많고 또 그러면 애들이 수업을 못 견뎌하거나 졸거나 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면 가끔 무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어 아이들을 긴장시키기도 하는데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날 무섭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중의 한 아이가 바로 이 원이라는 여학생이었다.
어느 날
원이는 학교 자습을 하고 밤 늦게 집 앞에 도착하였다. 원이네 집은 아파트 단지였으나 조명등이 낡아 입구에서부터 좀 어둑어둑했다. 고3들이 수능을 막 끝낸 뒤, 겨울 초입으로 들어간 밤은 유난히 쌀쌀했고 원이는 외투 깃을 세우며 종종 걸음으로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다.
그녀는 1층에서 자기네 집 층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닫히려 하자 한 여중생이 갑자기 획 타더라는 것이다. 근교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연약하게 생긴 아이였다. 원이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여서 좀 의아했다. 대체로 같은 아파트 골목에 살다 보면 아래층 위층에 누가 사는지는 대충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원이네집 아래층 버튼을 누른 체 원이를 마주하고 섰다. 그제서야 최근에 아래층에 할머니가 손주들과 이사를 왔다고 들은 것도 같았다.
"아 **호에 이사온 아이구나."
원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여학생 얼굴이 너무 창백하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이 유난히 차갑게 추웠다. 원이는 이빨이 달달 떨리는 것을 참으며 목을 자라목처럼 잠바안에 집어 넣으면서 말했다.
"너 어디 아프니?"
아이는 힘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아뇨."
그랬다. 그리고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어느덧 그 아이가 내리고 원이도 자기 집 층에 내렸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원이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아랫집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젯밤 늦게, 이사온지 얼마안된 아래층 중학생이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사고 난 시간을 보니 원이가 엘리베이터를 탔던 시간과 비슷했다.
원이는 순간 정수리 위로 빙하의 얼음물이 떨어지는 듯한 오싹함을 느꼈다.
어젯밤 늦게 아래층에서 내리던 아이를 떠올렸다. 오늘 죽은 아이와 같은 학교 교복을 입었던, 창백한 여자아이를. 원이의 실제적인 경험담에 아이들은 한참 입을 쩍 벌리고 무서워하였다. 아예 귀를 틀어막고 안 듣는 아이도 있었다. 나 또한 그로부터 한 달간 엘리베이터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하였고.
그 아이는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목소리에 힘을 주지도 아니하고 얼굴빛도 평온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원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듣고 나서 더 무섭다.
어려서부터 겨울 방안 따스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안고 듣는 무서운 이야기들만큼 집중력을 일으키는 것은 없었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들은 아예 듣고 싶지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지만 가끔씩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떠난 후 그 시간들을 돌이킬 때에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나누었던 많은 것들이 뚜렷하게 또는 희미하게 떠오른다.
세상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선함에 대해서 그리고 청년기 그들의 갈등과 고민까지도 같이 하고 나누었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였고 또 쌓아가고 있다.
그 중학생이던 아이들이, 또 고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세상을 떠메고 살아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