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밭에서

by 미셸 오


작년부터 독감에 관절염에 두통에 요로결석까지..병원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더니 올 여름에는 급기야 감기 몸살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말았다. 올해 74인 나의 친정엄마 말이다.

입원만은 안 하리라고 링거 주사를 한 달 동안 거의 8회를 넘게 맞은 후였다.

일 년전부터 몸이 계속 안좋았던터라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는데 다행히 십 여일 입원 후 회복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엄마의 걷는 모습에서 굽어진 등을 발견하였다.

육신이 몸안의 병균과 싸우느라 힘에 부쳤던가. 이제는 독감에도 뼈힘까지 동원하느라 뼛골이 빠진 것인가. 작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아픈 몸을 이끌고 한의원으로 통증의원으로 얼마나 많은 병원을 찾아다녔던지 모른다. 병원마다 건네주는 약들과 물리치료는 원인치료도 안되고 돈은 돈대로 들고 사람은 사람대로 힘에 부치는 것이었다.

늙는다는 것이 얼굴의 주름살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끔찍하게 깨달았다.

언제나 꿋꿋한 허리로 당당하게 삶을 마주했던 엄마였는데.


"허리 쭉 펴고 바른 자세로 쫌 걸어봐 ."


그녀는 딸의 짜증섞인 말이 아니더라도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눈치였으나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등이 보였다.

의사는 쭈그리고 앉으면 안된다고 했지만 매일 채소를 다듬어 김치를 담그고 하루도 쉴 새 없이 집안 청소에 손빨래를 하는 그녀에게 그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젊었을 때 삐끗했던 부분이 나이가 들어 나타난 것이라 수술도 안된다고 하였다.

늘 괜찮다고 하면서도 등에 항상 손이 가 있고 매일 아침 물리치료실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일요일 오후 동네 할머니가 상추를 캐러 자기 텃밭으로 올라오라고 엄마를 불러내었다.

그녀는 아픈 등을 추스르며 상추를 얻으러 텃밭으로 올라갔다. 상추가 잘 자라서 삼겹살에 싸서 먹으면 맛좋겠네 하며 상추이파리를 돌려가면 신나게 뜯었다.

상추밭 옆 이랑에는 배추도 튼실하게 자라서 밭주인은 엄마에게 배추도 몇 포기 캐어 겉절이를 해서 먹으라고 하였다 . 상추를 다 캔 후 배추 한 포기를 캐려고 배추밭으로 몸을 기웃하던 찰라였다. 몸뚱이가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순간 그녀는 자신이 넘어지려는 곳에 방금 캔 상추 소쿠리가 있는 것을 보고는 잽싸게 한쪽 손을 땅에 짚었다. 그러나 다리는 허약하고 뱃살이 수북한 여인의 상체가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땅을 짚었던 손목은 힘없이 꺾이고 소쿠리의 상추들은 그녀의 넓은 엉덩이에 깔려 버렸다.

밭둑을 올라오던 동네 사람도 텃밭주인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억지로 일어나려 애를 쓰다가 땅에 벌렁 누워버렸다. 텃밭주인이 간만에 크게 웃었다며 배추 몇 포기를 더 캐 주었다.


다음 날

배추밭에서 접지른 손목이 아파 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갈 때부터 뭔가 이상해서 생각해보니 허리가 안아팠다. 착각인가 싶어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누워도 보고 두드려도 보았지만 언제 아프기나 했냐는 듯 멀쩡하였다. 엄마는 곰곰이 허리의 통증이 사라진 이유를 생각했고 지극히 타당한 결론에 이르렀다.

상추밭에서 엉덩방아를 찧을 때 어긋났던 뼈가 바른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어젯밤에는 꼬리뼈가 아파서 죽겠던데 오늘 몸이 어찌나 가볍는지... 그 아프던 게 나았다. 밭에서..웃겨 죽갔다, 그때 허리가 쫙 펴졌는갑다. 신기하다... 정말로, 하하하"

전화속 엄마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래도 긴가민가 하였는데 우리 집에 왔을 때 직접 보니 예전의 몸처럼 꼿꼿해 보였다. 다시 확인하려고 자켓을 벗어보라 하고 걸어보라 하고 뒤의 등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해도 펴진게 확실하였다.

"넘어질 때 흙밭이 아니었음 크게 다쳤을건데 손목이 흙에 푹 들어가면서 말뚝에 손목이 부딪혔다. 넘어질 때 허리가 휘면서 디게 아팠거든."

그러면서 우리집 방에 있던 무거운 박스를 번쩍 들어보였다.

"이것 봐라. 이전에는 아파서 박스를 못들었거든. 이젠 안아프다."


물론 이렇게 계속 되었으면 행복한 결말이 되었을 텐데 사실은 일주일이 지나자 원상태로 허리는 다시 굽었고

정형외과 물리치료실로 매일 아침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현재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