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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쌤 이야기
#송가인이어라~
by
미셸 오
Jan 27. 2020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대략 18년쯤 된 것 같다. 텔레비전을 없앤 것이.
예전 20대 때 텔레비전 유선을 통해 중드를 많아 봤던 기억이 난다. 주말이면 '황제의 딸' 같은 드라마에 푹 빠져 하루 종일 연속으로 보며 시간을 보냈다.
텔레비전을 없앤 후에는 드라마는 물론 가수들의 콘서트를 볼 일이 없었다.
간혹 인터넷을 통해 듣고 싶은 음악만 찾아들었기에 관심 밖의 가수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않았고
또 유행하는 노래와도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트롯 가수 '송가인'이라는 가수가 인터넷에 수시로 뜨는 것을 보았다.
가끔씩 편집된 그녀의 노래를 접하긴 했지만 그렇게 감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이번 설에 친정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자기에 싸 갖고 오셨다가 집에 두고 가셨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텔레비전이 없어 심심
하기 때문이란다.
그리하여 명절 시즌 동안 이 송가인이라는 가수의 '생일파티 쇼'와 '단독 콘서트'를 접하게 된다.
한마디로 나는 그 가수의 노래보다 그녀에게 쏟아지는 중년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객석을 가든 메운 내 또래 혹은 그 이상의 남녀들.
그녀의 생일 파티에는 전부 본홍색 옷을 맞춰 입은 전국구 대표들까지 천여 명이 왔고 그녀는 그들에게 구성진 노래와 감사패를 전달했다. 게다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처럼 환호하는 모습이라니...
방송에서는 그녀의 인기가 아이돌 급 이상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녀가 왜 그토록 인기가 많은 지 방송을 통해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우선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녀는 노래를 정말 잘했다.
그리고, 그녀의 쇼에 참석한
관객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들에게 진정 감사해하며 겸손하였다. 게다가 그녀에게 생일 선물로 미역국을 준비한 스텝의 노고를 진정으로 칭찬하며 맛있게 다 먹어주는 진정성. 그것은 정말 스텝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이다.
MBC 화면 캡처
그래서 어딘가 다른 송가인이라는 한 가수의 품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어 보게 된 그녀의 단독 콘서트.
분홍색으로 옷을 맞추어 입고 여전히 객석을 메운 중년의 청년들.
구성지게 꺾어 올리는 그녀의 음색은 지난 뜨거웠던 386, 젊음을 지나며 자식들을 다 키워낸 7080 세대들의 허전한 마음을 꽉꽉 채워주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 아우르는 그녀의 아우라. 그녀의 깊이. 그것은 설문조사에도 나타났듯이
그녀에게는 믿음이 느껴졌다. 언제나 변함없이 좋은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는 믿음.
그녀 스스로도 복스럽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처럼,
날카롭게 날이 선 흔한 방송국 미모가 아
닌 후덕하게 솟은 양 뺨과 함께 반달처럼 생긴 눈매와
입꼬리가 한 껏 올라간 입술까지도.
난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될 때마다, 석굴암 벽에 새겨진 보살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1부가 마쳐지고 2부로 들어설 때는,
나도 저 환호하는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팬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트롯을 듣다니. 내가. 그것도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가수
조용필
의 노래에 환호했던
세대답게.
삶의 고단함을 위로해 주는 그녀의 노래와. 그리고 듬직하고 넓은 그녀의 마음이 어우러져
마지막 '엄마 아리랑'을 부를 때에는 모든 감정이 클라이 막스로 치솟는 것 같았다.
이미 어머니와 사별하였거나 병석에 계실 부모님들. 그리고 이제 노년인 부모님들을 둔 그들의 마음속에도
내가 느꼈던, 저 마음 깊이 숨겨진 소리 죽은 아픔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트롯의 열풍이 분다.
10세기 고려가요가 전국을 휩쓸었듯이.
그래서 송가인이어라~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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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현재, 고등부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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