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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발의 꽃

by 미셸 오

기분이 자꾸 가라앉아서 장미꽃을 다섯 송이 샀다.

장미 향기가 진했다.

누런 종이에 둘둘 말아진 그것을 손에 쥐고 코를 꽃에 처박고 킁킁거렸다.

사람의 몸에서 장미 향이 이렇게 나면 얼마 좋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향수 장사하는 사람들은 망하여버리겠지.


다음 날,

주전자에 꽂은 장미가 조금 벌어졌다.

향이 진했다.

오후였다. 햇살이 구름에 가려있었다.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다.

독서 모임의 한 선생님이 아파트 아래로 내려와 보란다.

이 선생님이 내게 이런 류의 전화를 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산한 길로 발을 내딛자 아이보리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내 눈앞에 서더니

그녀가 내린다. 내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차 트렁크를 연다.

트렁크 안에서 꺼낸 것은 장미꽃이 가운데 촘촘히 박힌 꽃 한 다발이었다.

뻘쭘히 섰는 내게 꽃 한 다발을 맡기고 그녀는 곧장 떠났다.

나는.

투명한 비닐에 둘둘 말린 꽃 한 다발을 가지고 허공에 들어보았다. 잿빛 하늘 아래 꽃이 한동안 잊었던 설렘을 환기했다.

한산한 거리를 조금 걸었다.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곳으로 이사 온 후 가장 아름다운 한낮의 거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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