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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처럼 살고싶다

2020. 6월 첫 번째

by 미셸 오

어제는 얼굴이 자꾸 달아올라 무슨 일인가 했는데 낮 온도를 보니 32도였다.

얼음 얼린 것을 등에 갖다 대면서 끓어오르는 등줄기를 식히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얼굴과 등짝도 그렇게 끓지 않고... 해도 구름에 가려 아직은 살만하다.

어제부터 <츠바키 문구점>을 읽고 있다.

책 표지의 동백나무에 반짝반짝 예쁜 조각을 박아놔서 괜스레 행복해졌다.

책 내용은 읽으면서 오랫동안 보전돼 온 전통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아니...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해 준다.

원래는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색색의 색연필이든 연필이든 옆에 잡히는 대로 줄을 긋고 별표를 해두는 편이지만 이 책에만은 손을 대기가 싫어 그냥 조심스럽게 넘기면서 보고 있다.

여름 파트를 읽으면서 2년 전에 보았던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 영화를 떠올렸다. 그때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고향의 내리막길을 달릴 때 가슴이 어찌나 설레던지.




주인공 포포는 대필을 하면서 가끔 식사를 대접받기도 하고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기도 하는데 포포가 먹는 차도 -이전에 비록 좋아하지 않았던 차라도-다시 먹고 싶고. 그녀가 먹었던 장어덮밥도 먹고 싶다 생각한다.

시원한 감주도 먹고 싶었다.

그래서 가을 편을 펴기 전에 집에 있는 미숫가루를 얼음물에 타서 마셨다. 그래도 목마르다.

방에서 책을 읽는 딸에게 문득.

"수박 사러 가지 않을래?"

라고 했더니 ,

"지금 가장 더운 시간이야. "

그러고 보니 오후 두 시다.


마침 문자가 와서 보니, 어제 마*컬리에서 주문한 택배가 도착했다 한다.

아. 어제 마*컬리에서 새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체리 한 봉을 100원에 준다고 해서 주문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체리는 생각보다 양은 적었으나 싱싱하고 맛있다.


체리를 다 먹고 침대에 엎드려 가을 편을 읽는다.

여름 편을 쓴 작가가 가을 편을 쓴 작가가 다른 사람 같다. 여름은 여름 분위기에 맞게 통통 튀는 느낌의 문체였다면 가을은 좀 묵직한 것이 예의 바른데 형식적인 느낌이어서 의아했다.

포포가 대필을 의뢰한 사람들에게 손님의 정서와 태도와 경험 등에 맞게 대필을 하는 것처럼 작가도 계절에 맞도록 문체를 바꾼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너무 좋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활활 타오른다.

가을 편을 다 읽은 후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베란다에 걸린 샤워타월이 바람에 팔랑 인다.

몇 달 전에 산 세이지가 잘 자라더니 요즘 잎이 노랗게 변해서 시들시들하다. 나는 요즘 허브가 참 좋다.

베란다에는 향이 나는 허브가 몇 개 있다. 유칼립투스도 잎을 비비면 향이 좋다. 라벤더는 이제 꽃대가 세 개에서 4개로 늘었다.

여기는 차도가 가까워서 오토바이 소리가 5분 간격으로 시끄럽게 들린다. 오토바이의 굉음과 질주가 싫다.

음식을 시켜 먹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가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포포처럼 살고 싶다.

포포처럼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이 용솟음친다.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히 포포처럼 살 수 있었는데 더 큰 야망을 가지고 떠나왔다. 지금 원하는 곳에

원하던 집에 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의 경쟁구도 안에서 내가 지쳐간다.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며 가르치는 지식들을 흡수한다. 주어도 주어도 계속 "다오 다오" 하는 괴물들 같다.

같이 경쟁하며 서두르고 급하게 움직이며 긴장하는 삶이 싫어졌다.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포포처럼 동백나무...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너무 싫었다. 이유 없이.

그런데 이젠 동백나무가 좋아졌다.

집 앞에 동백나무 큰 거 몇 그루 심어놓고 국어 잘하고 싶은 초등학생 아이들 몇몇 모아놓고

재밌게 수업하고 싶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순수한 아이들 앞에 놓고.


내일은 주말이지만 고등학교 수업이 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았다. 다시 긴장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츠바키 문구점 봄 편까지 다 읽을 생각이다. 책을 읽을 때는 가장 좋은 친구와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은 좋은 친구와 함께 했으니 힘을 얻고 내일을 준비한다.

베란다 창으로는 이제 서늘한 기운이 스미고 뜨거운 햇살은 가시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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