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오쌤 이야기
#산책 후 초밥 먹다
2020년 6월 두 번째
by
미셸 오
Jun 6. 2020
해가 다 진 후 저녁에 딸과 집 근처의 산책길을 걸었다.
아파트 바로 아래로 조금 가면 길고 긴 하천이 흐르는데 그 양 옆에는 층층이 강을 따라 길이 나 있어서
마치 산책길이 여러 겹의 계단 같다. 사람들은 그 층층이 난 길을 따라오고 가며 산책을 한다.
우리는 강 바로 옆 맨 아랫길로 걸었다.
이 곳은 강이라기보다는 하천에 가까운데 풀이 너무 무성해서 시에서 관리도 안 해주나 보다 했는데
오늘 보니 수북이 자라던 풀들이 말끔하게 베어져 포대기에 담겨 여기저기 널려 있다.
종일 풀을 베어낸 차가 강 옆에 서 있고 운전석은 비었다.
베어낸 자리는 막 머리를 민 사람처럼 매끈하고 며칠 전만 해도 몸에 끈적하게 붙던 날벌레가 확실히 적다.
이 길을 걸어서 끝까지 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또 지쳐서 돌아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쯤 걷다가 다리를 건너 다시 오던 길의 반대편을 걸었다.
이미 여름 초입이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팔뚝에는 땀이 번질댄다.
이런 날에 조깅을 하면 살이 많아 빠질 것 같다.
토끼풀이 많이 자란 곳에서는 확실히 더 짙은 풀냄새가 난다. 데이지도 있다.
"나는 저런 자연적인 풀꽃들이 파는 꽃들보다 좋더라"
딸이 나의 말을 듣더니 소리 내어 웃는다.
"며칠 전에 한 송이 3천 원 하는 장미 다섯 송이 사들고 좋다더니..."
"그래 장미도 예쁘지.. 근데 너무 비싸지.."
산책로 중간에 운동기구들이 보였다.
나는 철봉을 몇 번하고 허리 돌리기를 했다. 운동기구 하나가 고장이었다. 갱년기 어깨 결림에는 철봉을 하면
낫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아파트에는 철봉이 없는데. 이 철봉을 하기 위해 매일 이 먼길을 올 수는 없지 않은가. 오래간만에 잡아보는 철봉에 팔을 매다는 것마저 힘에 부친다. 예전에는 저 철봉에 어김없이 몸을 올리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한 손에 각각 페트병을 들고 경보 걸음으로 재빠르게 여자 두 명이 지나갔고 주말이라 먼 길을 왔는지 모자를 쓴 중년의 여인 서넛이 한가로이 걸어간다.
잠시 후,
점심을 일찍 먹은 터라 배가 고파왔다.
나는 <츠바키 문구점>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식 음식이 먹고 싶어 졌다.
"우리 오랜만에 초밥 먹을까?"
"음......"
"그럼 우리 아까 정식집이 새로 생겼던 게 거기 가볼까?"
"아무래도 초밥이 낫겠다."
우리는 오다가다 눈여겨봐 온 일식집 <겐지>로 갔다.
예전에 겐조 향수를 썼던 기억이 난다. 겐지로 가니 1인분에 13000원이다.
원래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도 막상 가면 실망을 하였던 터라 별 기대는 안 하고 나는 먼저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이 너무 더러웠다.
변기에 묵은 때가 테두리 져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휴지통 밖에 함부로 버린 휴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리에 돌아와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자꾸 화장실 변기가 생각났다. 우리가 앉은 벽 너머가 바로 화장실이었다.
다행히 초밥 맛은 괜찮았다.
주인에게 화장실만 깨끗하게 하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초밥 맛을 버릴까 봐 밥을 먹는 동안은 화장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딸도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 같은 생각 이리라.
그런데 초밥을 먹다 보니 예전에 먹던 초밥 집들이 생각나고 또 오랜만에 먹는 초밥 맛에 감동해서는
튀김까지 주문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글쎄 주문하자마자 나온
튀김은 색도 칙칙하고 눅눅한 것이 맛이 영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오늘의 초밥으로 만족했어야 했는데.
밥값을 지불하고 나오면서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 같다.
이사 온 후 처음 가본 초밥집. 화장실의 더러움만 기억될 듯하다.
한 번씩 가고 싶은 맛난 음식점이 같은 동네에 있는 것은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다.
매일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마음의 흡족함을 얻기 위한 주인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그런
식당 어디 없나?
나는 배가 고프다.
keyword
초밥
산책길
산책
11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멤버쉽
미셸 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현재, 고등부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독자
1,937
구독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
매거진의 이전글
#포포처럼 살고싶다
#바나나 똥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