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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May 11. 2021

#휴대폰이 죽었다.

휴대폰의 생명력은 3년.

동생과 페이스톡을 끝낸 후였다.

갑자기 쓰던 전화기가 불통이 되어버렸다.

예고도 없이 새까맣게 변한 화면에서는  소리는 물론 시각적인 미세한 반응조차 전혀 없었다.

딸에게 내 번호로 전화를 해보라고 했더니 신호는 간다고 하는데 전화기는

깜깜이.. 깊은 심해 속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3년간 썼으니 고장 날 때가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전화기를 새로 바꾸는 순간 다달이 불어날 전화요금을 생각하면 고쳐쓸 수

 있으면 고쳐서 써야 했다. 그러나... 서비스 센터가 너무 멀었다.

 택시를 타고 달려도 40분 거리.


"이런 촌구석... 신도시가 아니라 시골이구만.."


나는 그렇게 투덜거렸고, 분명히 수리를 한다 하더라도 부품비가 턱없이 비쌀 것이라고 위안을 하며

대리점으로 가게 되었다. 집 가까운 곳에 대리점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깨끗하고 넓은 매장 안에 빛을 발하며 기대 있는  신상들.

오로지 휴대폰만이 쉴 새 없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듯한 세계다.

내 고장 난 전화기를 충전기에 꽂아보면 직원이 말한다.



"전화기가 완전히 먹통입니다. 안의 자료들을 뺄 수 있을지.. 한 번 해보긴 해볼게요."


그렇게 해서 암흑의 휴대폰 안에서 그들만이 쓰는 어떤 기능을 통해

전화번호와 사진만 겨우 건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

나는.

폰으로서의 기능만을 착장 한 가장 싼 폰을 사리라 마음먹었지만 내가 원하는 폰은 없었다.

그 대리점에서 가장 싼 것이 56만 원이란다.

통신비.. 전화비.. 이자... 무제한 데이터 의무사용.. 등등 복잡한 것들을 거쳐 다달이 내는 돈만

기존 전화세의 3배가 나온다. 솔직히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전화기 없이 어떻게 살까?

모든 모임이나 소식들이 카카오나 문자로 주고받는 시대가 아닌가.

요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노트에 기록을 하지 않고 탭을 들고 다니면서 필기하고 색색으로 중요한 곳에 밑줄을 긋고 저장한다.

내게 시험 범위도 다들 카톡으로 보내준다.



그동안.

전화기를 바꿀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전화세를 내고 썼었다.  휴대폰 할부가 끝나고 약정을 하지 않고 전화요금이 낮아질 때면 맞춤이나 하듯 전화기가 생명을 마감하는 것이다. 다달이 내는 비싼 통신비가 그것들의 생명줄이나 되는 듯이 말이다.


상담직원과 여러 대의 전화기를 놓고 통신비를 맞춰보다가

결국 가장 비싼 전화기를 계약하고 말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상담사의 이런저런 말들의 절반을 알아듣지 못하겠다. 결론은 전화기가 비쌀수록 좋다는 것밖에는.


이렇게 휴대폰 이야기를 글로 쓰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5년 전 노트 기능이 있는 휴대폰으로 바꾼 지 한 달이 되었을까?

지인이 찜닭이 유명한 곳이 있다고  도시 변두리에 있는 닭집으로 안내를 했다.

주인이 직접 기르는 닭을 잡아 삶고 닭의 배 안에 녹두를 넣었는데 고기는 좀 질겼지만 녹두죽은 맛이 있었다.

비까지 우중충하게 내리는 오후에 비싼 점심에 자신의 차로 드라이브까지 시켜주니 같이 동행한 우리로서는

그녀의 베풂이 고맙기만 하였다.


그녀는 우리를 태우고 여기저기 경치 좋은 곳으로 차를 몰더니

새로 생긴 골프장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푸른 잔디가 시원하게 펼쳐진 곳에서 차를 멈추었다.

예전에는 야생의 자연이라 특별히 눈길이 가는 이 아니었지만 잔디를 깔아 정돈하고 매끄럽게 길을 내놓으니 되려 인상적이었다. 이후 그녀는 경치 좋은 해변가의 펜션 입구에 차를 세웠다.

유명한 외국의 관광지처럼 잘 지어진 하얀 건물들이 요리조리 멋지게 자릴 잡고 있었다.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차에서 내렸고 그 풍경들을 사진에 담느라 분주했다.


펜션 입구를 들어서니 펜션 뜰로 가는 길에는 네모진 박석이 깔려 운치를 더 했다.

지인은 한껏 신나서 손까지 흔들며 가족끼리 여름에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나는 오른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앞서가던 지인이 몸을 갑자기 틀었고 높이  들었던 손을 급하게 내리면서

 휴대폰을 세게 치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북채를 잡은 사람이 큰 북을 내리치는 것과 같았다.

순간 내 손에 들렸던 휴대폰이 직각으로 날아 발아래로 떨어지면 꽂혔다.

그렇다. 그것은 바위에 휴대폰이 꽂히는 소리였다.


"푹!"


전화기의 파손 정도를 감지할 정도로 묵직하게 박히는 소리.. 내 금빛 새 전화기는 자연석으로 된 단단한 바닥의 돌에 모서리를 박은 후  벌렁 나자빠졌다.


"앗!!"


세 여자의 비명소리. 가슴이 철렁했다. 액정이 깨진 것은 아닐까.. 그러나 걱정하며 들어 올린 전화기의

 액정은 무사했다. 그래서


"어머나 어떡해?  전화기를 새로 사주어야 하나?"


미안함이 담긴 지인의 말소리에 대답할 수 있었다. 괜찮다고 말이다.

그러나 뒤집어본 전화기의 뒷면은 충격이었다.

바닥에 찍힌  모서리부터 시작해서  지진이 난것처럼  여러갈래로 금이 가 있었다. 모서리 역시 까일 대로 까였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속상했다.


"미안해요. "


연신 미안해하는 지인 앞에서 얼굴에 표를 내기도 그렇고 참 난처하였다.


다행히 비싼 전화기답게 그렇게 박치기를 하고도 통화는 되었다.

나는 왜 그녀에게 새로 사달라고 못했던가.

점심까지 얻어먹고 그녀의 차로 드라이브까지 하고.. 게다가 그녀는 나의 학부모였다!

집에 도착 후 그녀로부터

전화기 깨진 뒷면을 수리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새것으로 사지 않는 이상.. 까인 모서리를 두고  뒤판만 수리받고 싶지 다.

며칠 후 갈라진 전화기의 뒷면에 투명판을 사서 붙였다.

나처럼 손상된 전화기를 위해 나온 것인지 그것을 붙이니 금 간 곳은 더 커지지 않겠다 싶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당시 노트 기능이 되는 휴대폰의 가격이 가장 높았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3년 전 노트 기능이 없는 저가형 핸드폰을 구입해서 썼다.

그렇게 그것도 3년간 나와 24시간을 같이 하며 지냈고 한점 미련도 없이 어제 내 곁을 떠났다.

아주 깔끔하게 말이다.


이제 새로운 친구이자 나의 예전의 친구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에게 올 준비를 한다.

계약서를 쓰면서 직원이 말한다.


"이제 이 휴대폰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답니다."


"어머? 왜요?"


"노트 기능이 있는 탭이 따로 출시되기 때문이 아닐까?"


옆에 있던 딸이 거든다.


아 그렇구나.

이 노트 기능이 이젠 전화기에 담기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이 전화기를 사용해야겠구나.

이런저런 복잡한 서류 단계를 거친 후 드디어 새 휴대폰을 들고 대리점을 나선다.

5월의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내 가방 안에 담긴 새 전화기에서 계속 웅웅 거리며 메시지가 온다.

파란 하늘과 오월의 풍경을 닮은 내 전화기..

고장 나지 말고 오래 좀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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