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산책로를 걷다가 벚꽃이 다 지고 말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세상의 빛으로 밝히던 꽃잎의 화려함을 시기나 하듯이 처음에는 바람이 꽃잎들을
마구 쳐내더니 다음에는 빗방울이 그 떨어져 나간 흔적을 씻었다.
천지에 벚꽃은 어디에도 없다. 그 사라진 자리의 허전함을 메꾸듯 철쭉이 다홍색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산책로 주변도 초록빛으로 퍼지고 있다.
눈이 시원하다.
하천의 수량도 많아지고 그 많던 오리들이 보이질 않네.
꽃은 태어나는 순간 죽는 것 같다. 너무나도 짧은 것.
문득, 얼마 전에 친구 아버지의 죽음이 떠오른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응급실로 갔고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태어나 가족의 죽음을 겪는 일은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이다.
나의 엄마가 일 년 내내 죽음을 예감하며 병시중을 들 때 살아서 고통을 겪는 엄마를 보며
죽는 것이 더 편안하지 않을까 생각하였지만 당사자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했다.
그 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분이 댓글에 "죽는 것도 축복"이라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에 관한 신문기사의 댓글들 중 하나였다.
나는 여태껏 가족의 죽음을 두 번 경험했다.
어려서는 6살 난 막내 동생의 죽음. 교통사고였다.
미친 듯이 발악하는 엄마와 매번 기절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동생이 죽었다는 그 사실보다
이러다가 아버지 엄마까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깊은 흑암 속에서 검은손을 뻗어 올리는 듯한 죽음이라는 단어에 놀라 소리 내어 울었다.
그때 죽음은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었으며,
비 오는 날 무덤 속에서 동생이 되살아나서 관 안에서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몇 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살아 있었다면 50대가 되었을 그 아이는 늘 6살.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이승의 문을 닫고 저 세상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마중이나 나왔을까?
우리 엄마는 그때 깡충깡충 뛰면서 평생 가슴에 묻어둔 아들을 안고 오열했을까?
밥을 늘 맛나게 먹던 엄마가 배가 자꾸 나온다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 옛날의 막내 동생을 잃었을 때 엄마의 사진은 말라깽이 그 자체였다.
봄이었던지 노란 개나리꽃 같은 옷을 입은 엄마의 그 사진을 보면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읽어져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내가 죽어보지 않은 이상 저 세상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저 세상이란 것이 있어서 행복한 만남이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벚꽃은 꼭 바람에 날려 떨어진다.
빗물이나 강물을 타고 흐른다. 떨어진 죽음이 저 세상으로 기쁘게 달려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남은 자들은 슬퍼하지만 정작 죽음의 강을 건넌 사람들은
기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래 글도 누군가가 쓴 댓글인데 메모해 두었던 것이다.
"태어날 땐 내가 울고 만인이 기뻐하지만 내가 운명할 때 내가 웃고 만인이 슬퍼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