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똥~!"
이 시간에 누구일까? 화면에 비치는 낯선 여인의 얼굴.
"누구세요?"
"옆집이에요."
대문을 열었더니. 옆집 705호 아주머니다. 사실 얼굴이 기억이 잘 안 난다. 이사 후 서너 번 마주친 게
고작인 데다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손에 들었던 큰 봉지를 수줍은 듯 내민다.
" 텃밭에서 오늘 딴 상춘데... 좋아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좀 드시라고..."
나는 반색을 하고 반겼다.
"아! 상추요? 저 엄청 좋아해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대문을 닫으며 보니 그녀는 703호 문 앞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우리 라인은 세 집이 ㄴ자 모양으로 사는데 703호는 우리 집과 나란히 붙어 있다.
주방에 상추를 쏟아놓고 보니 엄청난 양이다. 적상추에다 로엠 상추 게다가 샐러드며 허브까지 다양한 채소가
향을 발한다. 게다가 정말 싱싱하다!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먹지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채소들을 또 아는 사람에게 나눔을 하였다.
채소란 싱싱할 때 빛을 발하니까 말이다.
이사 온 후 처음 받아보는 이웃의 선물이었다.
이곳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 그런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 인사하는 것 외엔 다들
어떻게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또 관심도 없다.
705호 아주머니는 아마도 작년에 새로 이사를 온 듯하다. 첫 인상은 시골 아낙처럼 서글서글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차 마주친 적이 별로 없다.
꾹꾹 눌러 담은 채소를 보니 아주머니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떤 소설에서 보면.
'도시에서의 삭막한 삶이 싫어 시골에 집을 지어 이사를 강행하였으나 시골에서의 삶도 도시와는 다른 스트레스가 있었다. 해서 다시 도시의 집으로 이사를 하려던 중
시골의 인심 좋은 아저씨를 만나면서 그녀가 찾아다녔던 것은 시골. 도시의 집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따스한 정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도시로 오는 것을 그만둔다.'
작은 소도시에서, 오지랖스럽던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신도시에서의 익명성이
좋았다. 그러나 한편, 이 자유가 정말 내가 바라던 안락함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익명성이 가끔은 황량하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골에서나 봄직한 땅 냄새가 풀풀 나는 채소를 한 아름 받고 보니 신도시에서의 금기를 깬것마냥
신선하고 기분이 좋다.
이사 온 후 처음 느끼는 훈훈함이다.
또한
내 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눔으로 내가 준 상추를 고기쌈을 해서 맛나게 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잔잔한 기쁨이 배가 된다.
이웃에게 무엇을 건넬 때 내가 준 것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싫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내켜도 그만둘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을 내가 너무 조심했나 보다.
이런 나눔의 연대를 나도 이웃들에게 조금씩 실천해 볼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