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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May 27. 2021

#달팽이

이전에 상추 이야기를 쓸 때에 따로 접어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웃이 가져다준 상추를 수돗물에 한 장 씩 흔들어 씻는데 뭔가 묵직한 것이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달팽이였다!

상추 잎에 달려있다가 상추밭에서 우리 집까지 장거리 이동을 한 것인데 살아 있었다.

옅은 회색의 껍질을 쓰고 더듬이를 한껏 들이민 채 죽은 척하고 있는 것이 귀여웠다.

그것을 유리병에 담아 상추 잎을 뜯어 같이 넣어주었다.

딸은 달팽이가 밖으로 나온다며 병 입구에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뽕뽕 내어두었다.

다음날,


"병 바닥에 있던 달팽이가 지금 비닐에 달라붙어 있어."


딸이 가져온 유리병을 보니 상추는 먹지 않고 밖으로 나오려고 시도했던가 비닐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 근데 이 검은 건 뭐야?"


달팽이 옆으로 검은 물질이 묻어있었다.


"응.. 그거 달팽이가 똥 싼 거야."


놀라웠다. 왜 나는 달팽이도 똥을 싼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을까?


"잉? 뭘 먹었다고 이렇게나 많이 쌌어?"


작은 달팽이가 싸놓은 검은 똥이 가느다란 검은 실을 개킨 듯 세 무더기다. 


"잉... 징그러. 그냥 아파트 화단에 갖다 놔 버려."


"하하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러나 하필 그날은 비가 와서 달팽이는 우리 집에서 하루를 더 살았다.


다음 날에는 비가 개었고 달팽이는 이제 병 바닥의 상추 있는 곳으로 내려와  있었다. 

달팽이도 배가 고프니까 먹을 것을 찾아 먼 길을 이동하였나 보다. 우리는 아직 땅이 촉촉한 화단의 풀잎에 달팽이를 놔주었다.

싱싱한 상추밭에서 동료들과 헤어져 홀로 어찌 살아갈지 걱정도 되었지만...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풀숲을 보니 달팽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느린 걸음으로 어디로 향하여 갔을지.

등에 무거운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를 보면서 

문득

달팽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집을 받고 태어나니 복을 받은 듯싶다.

인간은 맨몸으로 와서 집 한 칸 장만하느라 별의별 힘을 다 쏟는데 하는 생각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 그 부드러운 몸뚱이에 딱딱한 집을 이고 다니니 빨리빨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도 하여본다.

뭐 이런저런 달팽이에 대한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살아 있는 달팽이 한 마리를 가지고 하루의 짧은 일화를 가졌으니 좋다. 그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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