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셸 오 Jan 12. 2022

황당한 일

요즘 아킬레스건염이 생겨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


하루에 만보를 목표로 걷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발뒤꿈치가 갑자기 찌릿찌릿하여 바닥에 있는 물건을 집기가 불편해졌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쉽게 낫지 않는 다며 스트레칭을 많이 하란다.

물리치료를 일주일 이상 받았지만 그렇게 큰 효과를 못 보고 양방과 한방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지난 해 12월의 마지막 주였다. 포근하던 날씨를 뒤집듯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체감 온도는 영하 7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물리치료를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절대로 많이 걸어서는 안된다는 의사의 말을 새기며 보통 때면 걸어서 갈 거리를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날은 추웠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차도 어느 때보다 많았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 앞에서 택시를 불렀으면 되었을 텐데.

집의 방향과는 반대 노선인지라 택시가 찾기 쉽게 길을 건넜다. 막 치료를 마친 종아리가 뻑뻑하고

걷는 것이 영 어색하고 불편하였다.

4차선 도로를 건너 간 반대편은 음지쪽이라 바람이 세게 불고 병원 쪽보다 더 추웠다.



카카오로 택시를 부르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택시가 서야 할 자리에 다른 차들이 정차를 많이 해서

고개를 한 껏 빼고 택시의 번호를 확인하려 애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평소에는 차들이 정차하지 않는 빈 공간인데 가게에 들르기 위해 세워둔 차들이 택시가 정차할 곳을 가득 메웠던 것이다.

얼음 속같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데  저기 앞에서 내가 부른 택시가 천천히 오는 것이 보였다.  정차된 차들로 인해 기사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까 봐 나와 딸은 택시가 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난 두 여자가 우리보다 앞에 나타나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탈 택시를 타고 가버렸던 것이다.

 기사는 그 여자들을 우리로 착각한 모양이었고 그 여자들은 예약된 택시인 줄 모르고 택시를 잡은 것이다.

보통 택시들은 예약이라고 신호를 미리 켜 두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택시를 향해 가던 우리는 다른 손님들을 태우고 유유히 우리앞을 지나쳐가는  택시의 꽁무니를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손님을 잘못 태웠다고 해야 되는데 운전기사의 전화번호는 안 뜨고

내 휴대폰에는 손님을 버리고 달아난 차에 '승차 중'이라고 뜬다. 이런 기막힐 일이...

그래서 카카오로 다른 차를 호출도 할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차에 십 분이 지났고 그동안  빈 택시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운전기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아고 미안합니다. "

"아저씨! 확인을 하고 태우셔야지 그냥 태우고 가심 어떡해요?"

"아이고.. 하하하"

미안하다고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기사에게 더 이상 화도 못 내고 말았다.

이후  택시를 다시 호출했지만 이상하게도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딸의 팔에 의지해서

걸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호출한 차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 했다면 더 좋은 차가 나타나야 마땅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들인 공을 빼앗겼다는  억울함이 있었지만

나도 그렇게 남이 들인 공을 나도 모르게 빼앗았던 적은 없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아무튼 그날은 너무 추웠고 택시를 잡기 힘든 날이었고 또 택시를 타야만 했던 날이어서 더 황당한 기억으로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민가수 '박창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