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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Feb 09. 2022

#주방의 고마움

싱크대 수전이 고장이 났다.

설거지 후에 싱크대 아래에 물이 흥건해서 살펴보니 수도꼭지를 연결한 관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 거다.

아파트를 지은 지 얼마나 됐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주 전부터는 가스레인지 화구 하나가 점화가 안 되어 불편을 겪고 있는데 수도 호수까지 말썽이니 하는 말이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10년 가까이 되도록 수전에 물이 새거나 화구가 고장 나는 일이 전혀 없었고

요즘 새 아파트의 하자 문제들이 불거지는 시점이라 혹시나 하여 불만이 가중된다.

관리실에 전화하니 직접 수도를 설비한 회사에 서비스 신청을 하란다.

하필 금요일 오전이라 서비스를 신청하고도 기사는 담주에나 방문이 가능하다 한다.

이상하게도 몸이 갑자기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는 날은 꼭 주말이다.

할 수 없이

금토일 3일간 물을 퍼 나르면서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베란다에서 물을 받아와 설거지를 하면서  그간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얼마나 물을 펑펑 사용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세제를 깨끗이 씻어내느라 바케츠의 물을 서너 번이나 퍼다 날라야 했으니까 말이다.

결국 일요일에는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큰 접시 하나만으로 식사를 하였다.


그동안 주방의 싱크대에서 뜨거운 물로 씻고 닦고 살았던 시간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옛날에 주방도 따로 없고 집에 수돗물도 없던 시절에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고 설거지며 빨래를 해야 했던 그때 말이다. 우리 엄마는 정말 슈퍼우먼이었다.

빨래하러 동네 우물에 가고. 쌀 씻으러 가고. 먹을 물을 퍼다 나르던 그때.

집집마다 부엌문 앞에 놓였던 어린애 키보다 컸던 붉은 큰 물통. 그 물통을 가득 채워야만 마음이 편하였던 그 시절.

초등학교 때 그때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이런 멋진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리라곤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편리함에 젖어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던 거 같다.


며칠 후 수전을 교체하고 물이 나오자마자 싱크대랑 그릇들을 맘껏 씻으면서 주방의 고마움을 다시

다시 새겼다.

싫증이 나서 깨지지도 않은 그릇들을 버리고 새 그릇으로 바꾼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그릇을 참 많이 아꼈고 오래오래 쓰셨다.

시집갈 때 사 오신 스테인리스 타원형 긴 밥통도 아직 아버지 집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다.

버리기를 잘하는 나지만 엄마가 남긴 그 그릇들은 버릴 수 없었다.

너무 차고 넘쳐서 부족하게 살았던 시절을 잊고 살았던 것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결핍을 물질로 보상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여본다.

하여튼 주방의 수전이 고장 나는 바람에 3일간의 불편함이 나를 잠시 돌아보게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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