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셸 오 May 23. 2022

#여인의 삶이란..

오늘 안과에 갔다가 보았던 일이다.

여기 가까운 곳에는 안과가 딱 한 군데밖에 없어서인지 안과는 오전 일찍부터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길고 긴 소파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인해  창문이 없는 대기실은 전등을 켜놔도 갑갑하다. 그런데 그 대기실 중앙의 기둥에는 클래식 음악이 화면 속에서 계속 틀어져 나온다. 병원에서 클래식 음반을 듣는 것도 좀 생소하다.

30분을 넘게 기다린 후에야 딸의 시력검사가 끝나고 우리는 따로 원장실 앞 의자로 불려 갔다.

우리들이 앉은 의자 앞에는 직각으로 수납처가 보였다.


그때였다.

우리 앞으로 작고 깡마른 여인이 구부러진 어깨를 한 체 수납처 쪽으로 걸어갔다가 우리들 쪽으로 천천히

 돌아서 소파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언가 간호사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거 같았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두어 달 전의 우리 엄마의 모습과 동시에 오버랩되는 것이다.

얇은 바지 안에서 겨우 버티고 섰는 앙상하게 마른 두 다리와 주름진 손등에 불퉁불퉁하게 솟은

뼈들과.. 생기라곤 전혀 없는 눈빛과. 겨우겨우 죽을힘을 내서 천천히 걷는 모습이.

걸을 힘도 없으면서도 병원에 가면 꼭 간호사 앞으로 가서 궁금한 것을 스스로 묻곤 하던 모습이.

인생의 말미에 다 왔다는 신호외에도 그 육신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무슨 병을 앓고 있기에 저렇게 말랐을까... 세상의 온갖 질고를 겪고 마지막 생명을 겨우 이어가는 듯한 모습처럼 불안하게 지탱하는 저 가냘픈 몸을 나는 무심한 듯 스쳐보고 눈을 돌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잠시 후 딸애 이름이 불리고 우리는 원장실로 들어가 딸은 의사 앞에 마주 앉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주 크고 성난 남자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았다.

원장실 문은 열려 있었고 원장실 입구 왼편이 개방된 시력 검사실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남자는 화를 버럭버럭 내며 고함을 질렀는데 왠지 그 목소리는 듣기에 무척이나 공포스럽고 위압적이었다.


"뭐가 보이노 말을 해라 말을!"


"세게 말해라! 숫자가 몇번인지 말을 해라!!"


"뭐라카노?  숫자가 몇번인지 말을 크게 해라.!"


"자, 지금은 몇 번이고?"


시력검사를 받고 있는 사람은 좀 전에 내가 봤던 그 깡마른 여인이었고 내게 등을 보이며

화를 내는 사람은 그녀의 남편으로 보였다.

어깨가 넓고 등짝도 펑퍼짐한 데다가 딱 끼는 바지를 입은 그 남자는 뒷모습만으로도 건강하고 다부져 보였다. 그는 간호사가 짚는 숫자가 잘 보이지 않아 잠시 머뭇대는 아내를 못 견뎌서 화를 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겨우 숫자를 말해도 목소리가 작아 앞에 선 간호사가 못 알아들으니까

아내를 자꾸 다그치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불러주는 숫자를 대신 간호사에게 불러주고 그때마다 아내에게 화를 내고 고함을 질러댔다.

남편을 내보내고 간호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제지해도 될 법한 것을 간호사도 경험이 미숙한 것인지 남편의 고압적 태도에 얼어붙은 건지 멍하니 막대기만 전광판에 갖다 대고.. 아니 오히려 다급해진 간호사의 손길은 더 빨라져  안 그래도 남편에게 기가눌러 쩔쩔매는 여인을 더한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병원을 나오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속이 너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개미 같은  목소리의 아내와 달리 목소리가 굵고 우렁차던 그 남자.


공공장소에서 기력이 다한  사람을 그렇게 다그치다니... 평생을 같이한 허약한 아내를 그렇데 막 대하다니.

자신의 몸뚱이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여자를.

그 여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짚어볼 때 대강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남편 뒷바라지에 성격이 불같은 남편 앞에서 얼마나 전전긍긍하며 살았을 것인가.


한낮의 땡볕을 걸으며 무더위에 축 처진 나뭇잎을 보며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한오라기 바람에도 쓰러질 듯 바싹 마른나무처럼 휘청휘청 작대기를 짚고 걷던 엄마.


"내가 작대기를 짚고 걸을 줄 몰랐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정말 처연하고 슬펐다.

우리 엄마가 살았던 세대들.

내 주변 남자들의 가부장적 권력과 여자들의 순종과 희생은 너무도 당연시되었다.

물론 정말 괜찮은 남자들도 있었겠지만...


사랑하는 엄마.... 보고 싶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주방의 고마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