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7:1-6
1.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나는 고등학교 때 보니엠의 노래를 좋아했었다. 그때는 예수님을 믿기 전이었으므로 나는 가사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당시 유행했던 팝송이었고 그냥 좋아서 자주 들었던 노래였다.
가수(보니엠)들의 목소리는 탁 트인 바닷물 소리처럼 시원하고 매끄러웠으며 그 리듬은 저절로 춤추게 만들었기에 다른 팝송들보다 유난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이후,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우연히 유튜브를 보던 중 보니엠의 'Rivers of Babylon'의
가사가 시편 137편의 구절인 것을 알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졸지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서야
그들이 시온에서 드리던 예배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되며 눈물을 흘린다.
코로나가 세계를 휩쓸 때,
교회에서 공동체 예배를 드리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는 그동안 내가 실망했던 교회 내의 여러 문제점들을 비판하며.. 내 신앙을 성찰한다는 명목하에.. 2년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기도를 하지 않았거나 성경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유튜브의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내 마음에 맞는 것만 쇼핑하듯이 듣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2년간 성경 전체를 3분의 1도 읽지 못했다. 게다가 기도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나는 늘 다른 일로 바빠서 잠이 쏟아질 밤에만 마지못해 주님을 찾았고 내 할 말만 하고 후다닥 기도를 마치곤 했다.
자식으로서의 의무감에서 억지로 부모에게 전화를 해서는 급히 안부만 전하고 전화를 끊어버려서 부모가 하고 싶은 말들을 미리 차단하는 못난 자식처럼.
그러나
그런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2023년부터는 꼭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서서히 코로나의 시대가 끝나가는 중이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서로 나누고 하는 그 시간들이 나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나는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생길 무렵이었던가 보다.
어느 날 몇 년 전에 타지로 이사 갔던 집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다시 이곳으로 이사를 올 계획이며 예전의 교회로 다시 나가게 되었다고 같이 가자는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이런 일도 있나 싶을 만큼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이곳에 이사를 온 후 첫 교회에서 내가 속한 다락방의 순장이었으며
낯선 곳에 외따로 떨어진 나를 여로모로 잘 챙겨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가 이사를 한 뒤 그녀와의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녀와 다시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삶 속에서 매일매일 하루가 그 하루같지만 다 다른 날들인가 보다.
눈물 많은 삶 속에서 가끔씩 이런 기적을 접할 때 내 삶에는 윤기가 흐름을 느낀다.
그녀는 올 새해 새벽기도 7일간 내게 차를 태워주었고 어둡고도 매서운 겨울의 새벽바람 속을 뚫고 같이 특새를 마칠 수 있었다.
정말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새벽기도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내가 없었다면 새벽기도에 나오기 힘들었을 거라며 되려 감사하게 여겼다.
나는 주님 앞에 회개하는 2023년 새벽기도를 나가면서 그동안 메말랐던 내 심령에 촉촉한 성령의 단비를 맞으며 공동체 예배 속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두 달간 공동체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하나님께 드렸던 이전의 예배가 하나님께 은혜만 받기 위한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예배였기에 예배자로서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주일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인데 난 늘 예배 후 '은혜받았다'의 여부를 따지곤 했다는 것을.
그러므로 목사님의 설교 중 인용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듣듯이 말씀을 받으며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였던 것이니 교회 내 사람들의 태도를 정죄하거나 판단할 일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목사님이 선포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로 마음먹었다.
2월 19일, 오늘 하나님께 찬양을 할 때 나는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영원히 이렇게 찬양을 하겠구나 하고 미래의 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서 있을 나의 모습을 오버랩할 때 내 눈에서 눈물이 쉼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친 몸을 강가에서 쉬일 때,
시온에서 예배를 드리던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다시 그려졌다.
그들도 이전의 내가 가끔은 교회에 가는 것을 귀찮게 여기며 예배를 등한시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의 예배의 날들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고 반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와서도 바벨론의 우상 앞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버림으로써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증명하여 주었다.
내가 2년간 교회를 다니지 못했을 때에도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멀어질까 염려하였던 것처럼.
이 시편의 말씀들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들을 정말 감사해하며 소중히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절실히 깨닫게 된다.
내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소낙비처럼 쏟아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