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석희 옮김
-소설의 사건 무대를 서구화 풍속의 대중화가 시작된 다이쇼 시대의 시민사회로 슬쩍 허구화한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별로 내키지 않았던 것은 흔해빠진 삼류드라마의 제목 같았기 때문이랄까.
아니면 몇 명 독자들의 리뷰를 통해 그 줄거리를 대충 알았기 때문이랄까.
암튼 여자를 데려다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문득 입센의 인형의 집이 떠오르고 블라디미르의 롤리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금기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문체로 미끄럼을 타듯이 나를 홀렸던 롤리타 작가의 문체를.
인형이 되기를 저항하고 집을 나간 로라를 생각하면서 책을 펼쳤다.
응?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책을 읽을수록 나는 서술자 '나'의 이야기에 설득당해가고 말았다.
그의 이야기는 솔직한 자신의 고백으로 나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돈 없는 여자를 산거잖아? 그렇게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음...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나오미가 배신을 해? 은혜를 모르는 군. 그런데 왜 그 나오미를 밀어내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나는 서술자와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책을 다 덮었을 때는 난 '사디스트인 나오미와 한 마조히스트 성향인 나'의 뒤에 숨은 그 시대의 일본을 풍속을. 그 시대를 향한 작가의 날 선 비판을 읽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랬다. 그것은 그 시대의 일본의 서구 문명에 대한 미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그것은 아니야 아니야라고 부정할수록 포기할 수 없게 만든 일본인에게는 마약과도 같은 서구문명이었다는 것을.
그러나 백인의 흰 피부는 나가 만들어낸 나오미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서구인처럼 옷치장을 하고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또 양옥집에 살고 영어를 하고... 이름까지도 다 갖추었다고 하지만 피부색만은 숙명처럼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서구화된 나오미는 결국 내면은 없는 빈 껍데기뿐이요 무례하고 음탕하고 거짓말 투성이었다!!!!
그래도 나는 나오미(서구의 문명)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그녀를 등에 태우는 말의 모습을 할지라도 그녀만 좋다면 얼마든지 나를 희생할 수 있는 불쌍한 나의 모습. 결국 일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내가 예전에 읽은 루쉰의 중국인의 습성을 고발한 아큐처럼 강자에 맞서서 이길 수 없음에도 끝없이 나약한 본인을 자기 암시 및 합리화를 하면서 죽어갔던 아큐(중국)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끝으로 1인칭 독백의 예의 바른 나의 문체가 건방지고 무례한 나오미를 더 부각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뛰어난 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래는 우리 독서모임의 회원들께서 보내주신 감상문입니다. 모아서 올려드립니다.-
<이*영>
금요일 도쿄로 가게 돼서 리뷰로 대신합니다
P170 -비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천지를 가두고, 내 몸을 전후좌우에서 포위하고...
먼저 빈틈없이 천지를 가둔다는 표현에 반하고
P317-창밖은 바싹 마른 공기 속에 아침햇살이 환하게 비쳐서 털구멍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만큼 밝습니다
털구멍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만큼 밝다는 표현에 와우 미쳤네 했어요
이런 미친 표현력이 막장드라마로 딱인 이 소설을 막장으로만 치닫지 않게 한 힘이 아닌가 싶어요
100년 전의 이야기를 오늘의 시점에서 읽으니,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장난감이니 장식품이니 하는 식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굉장히 거슬렸고 P60-에서 이미 작가 자신이 "나오미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과 인형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양립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이야기"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경제적인 능력은 있지만 외모상 볼품없는 조지가 나오미를 근대적인 하이칼라 부인으로 만들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했으나 너무나 근대적이고 자유분방한 나오미에게 되려 굴복하고 복종하는 남자의 지질함과 어리석음의 끝판왕을 본 것 같아요. 댄스이야기가 사건의 주가 되는데 20대 때 괜찮게 봤던 일본영화 셀위댄스가 생각이 많이 나서 한 번 더 보고 싶단 생각을 했고 이번에 여행 가는 지역이 마침 이 책에 언급됐던 곳이랑 겹치는 곳이 많아서 책을 읽는 동안 조지와 나오미를 따라 끊임없이 우에노, 센소지, 아사쿠사, 진자 등의 거리를 걸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익히 얘기했던 영화 바다 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이기도 한 가마쿠라에 안 그래도 이번에 못 가서 좀 아쉬움이 들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요코하마와 같이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김*미>
짧은 책은 아니었으나 금세 읽고 말았던 책이었습니다.
문체가 참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의 발간연도를 찾아보니 어머나 1920년대라니.... 엄청나게 진보되고 파격적인 소설이구나 싶었네요.
탐미주의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하는데 말마따나 나오미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너무나 다채로운 표현들에 감탄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읽더라도 전혀 촌스럽거나 막힘없는 세련된 필체가 너무 대단한 작가 같았습니다. 일본 유명한 장소들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옛 생각도 나면서 가고 싶었고요.
일본인의 젠체하는 모습과 사고방식이 여실히 가감 없이 표현해 낸 소설이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전*진>
두 주인공 조지와 나오미의 이상성애를 묘사한 이 소설이 100년 후인 지금 우리에게 문학성을 갖춘 일본대표 작품으로 읽히는 이유는 작가의 뛰어난 문체라고 생각한다.
간결하고 자세한 묘사가 작품의 몰입감을 높여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조지는 나오미의 비위를 맞춰주며 자신의 이상에 걸맞은 하이칼라로 그녀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나오미에게 점점 지배당하고 있다.
너무나 평범하고 상식적인 조지가 결혼에 대해서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하이칼라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좀 의아했는데, 작품해설에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시대상을 반영한 인물이 조지로 대변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이해가 되었다.
변*옥
미친 사랑에 담긴 시대적 상황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내겐 단순히 어린아이를 갈망하는 한 남자의 사랑이 아니라 서구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풍자하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다. 나오미는 서구화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조지)의 노력의 산물이며 그로써 서구의 문화를 뛰어넘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뛰어넘기는커녕 수준이 낮아 절대 서구에는 미치지 못함을 깨닫는 일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상상이 되도록 자세히 묘사한 글솜씨가 뛰어난 작가이다.
일본지역을 잘 안다면 책 속에 나오는 지역명으로 더 몰입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일본여행을 꼭 가고 싶다. 고로 현재 일본에 있는 주*선생님이 부럽다.
우리 일본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