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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Jul 31. 2023

#여름휴가

올여름휴가는 친정아버지 집엘 다녀왔다.

아버지 집 베란다 화분에는 베고니아가 싱그럽게 자라 있다.

아버지는 혼자 사시면서도 늘 깨끗이 집을 청소하고 사시기에  아버지 집은 싱크대만 제외하면 내가 오랜만에 가도 손댈 곳이 없다.

싱크대에는 딱 그릇 서너 개와 숟가락 외는  사용하지 않고 양념들도 한 번씩 가서 보면 유효기간을 넘긴 것들이 있어서 그릇정리며 양념정리를 해 둔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가면 늘 내가 돈 주고 사 먹던 것들이 차고도 넘친다. 텃밭을 가꾼 지도 십여 년.

엄마가 살아 계실 때 가꾸던 자투리 땅에다가 이웃 큰 밭주인이 아버지에게 땅을 더 주어서  아버지 혼자 그 밭을 다 가꾼다. 가꾸다가 땅이 너무 넓다 싶으면 이웃 할머니들한테 조금씩 떼어준다.

냉장고 안에는 콩. 가지. 오이. 파. 양파. 옥수수 등등이 가득 차 있다.

" 너희들 오면 같이 먹으려고 토마토를 심었는데 이번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다 녹아버렸어."

아쉽다.

나는 토마토를 참 좋아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사서 먹는 것보다 아버지가 기른 토마토가 옛맛이 난다. 사서 먹는 토마토에는 예전의 그 토마토 본연의 맛이 사라지고 없다. 토마토 안 사 먹은 지 좀 된 거 같다.

우리가 도착한 날 아버지는 텃밭의 채소가 넘치는데도 시장에서 과하다 싶을 만큼 과일과 반찬을 많이 샀다.

3일간 아버지 덕분에 수박이니 복숭아니 과일도 실컷 먹고, 이웃에 배 타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버지 지인인 누가 먹갈치를 10마리도 넘게 가져다주어서 갈치구이 먹방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식사 시간과 간식 시간이 딱딱 정해져 있어서 그 시간에 우리의 식사시간을 맞추느라 배가 늘 불렀다.

오전 7시 아침. 오전 10시 간식. 정오가 되면 점심. 오후 2시에 간식. 저녁 6시에 저녁. 그리고  8시에 간식을 드시고 주무신다.

총 6회 드시고 늘 소식한다. 간식은 빵이나 과일. 그리고 커피는 덤이다.

난 끼니마다 소식이 안되어 많이 먹기도 했지만 아버지 밥상 차리느라고 바빠서 살이 찌지는 않은 거 같다.

예전.

바다가 오염되기 전에는 고기가 많이 잡혀서 고깃배 타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 집에는 늘 생선이 가득했었다.  고기가 풍성하게 잡힌 날이면 가까이에 사는 이모네 집이나 이웃에서 보낸 돔이나 우럭 같은 큰 고기들이 새벽에 우리 집에 배달되었고 우리는 새벽에 회를 떠서 먹었다. 그 새벽에!

특히 이모네는 우리 집에 일주일에 서너 번 큰 횟감용 고기들을 보내주었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던가.

고기도 예전처럼 많이 안 잡히고 예전처럼 풍성하지 않다.

이모도 그렇고 어장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바닷속이 고갈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고기를 나누는 집은 아직도 있다. 어제 갈치를 가져다준 사람은 일주일 전에도 커다란 고등어 두 마리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그 고등어가 배가 갈라져 냉동고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시장에서도 사기 힘든 큰 고등어였다!

7칸짜리 아버지 냉동고에는 올해 수확한 콩. 마늘. 파. 고등어. 갈치, 새우가 가득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10여 년 전인가?

 아버지 아파트 뒷 동에  장어배를 타던 기관사가 살았는데  이 집의 어린 아들이 있었던 거라.  그 아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 부모님이 그 5살 된 아이를 자주 맡아 주었는데 늘 답례로 보내던 것이 장어였다. 그것도 한 박스씩이나. 그 많은 장어는 우리 집으로 다시  옮겨왔고 장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것을 또 지인들에게 나눔 하였다.

다양하게 해산물을 취급하던 주위 지인들이 많아서 배를 타는 사람들은 게를 한 박스. 굴어장을 하는 사람들은 굴 10킬로씩. 다들 어찌나 그렇게 손이 큰지.. 나도 덩달아 손이 커졌었다.

그런데 아직도

아버지가 사는 그곳엔 정이 남아서 텃밭에서 가꾼 오이며 상추며 겨울에는 무, 배추 등등을 나누는 아버지의  손길 따라 줄줄이 전복, 고둥 같은 것도 오고 생선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 집 근처에 살면 반찬 걱정 안 하고 살 것 같은데.... 젊은 딸애는 그래도 시골은 싫다고 한다.

3일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 먹고... 그렇게 휴가는 마쳤다.

아버지는 이제 방 3칸짜리 당신의 집이 청소하기도 힘들고 또 1층이라 갑갑함을 느끼는지 아들이 한국에  오면 아들 근처에 작은 집을 사서 살고 싶다고 한다.

외국에 간 아들이 한국에 3년 안에 온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힘을 얻는 모양이다.

젊을 때는 집안에 가족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서 갑갑했었는데 이제는 가족들이 주변에 모여 살면서  자주 얼굴 보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

순식간에 흐르는 세월은 그땐 몰랐고 지나고 보면 후딱 지나가 있다.

난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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