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고사리와 시금치나물. 생선을 준비해 놓고 큰 조개를 넣고 끓인 미역국. 텃밭에서 잘 자란 무와 배추. 우리가 온다고 질 좋은 쌀로 기름기 좔좔 흐르는 쌀밥까지 준비해 놓았다.
나물 해 먹은 지 오랬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오다가 들른 마트에서 산 콩나물을 삶고 채 썬 무를 삶아 4색 나물을 해서 비빔밥을 해서 먹는다.
우리 밥상엔 명절이라고 해서 튀김. 산적. 떡 ᆢ이런 거 전혀 없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명절에 필요이상 많은 음식을 만들지 말자고 이미 약속되었었다. 우린 명절에 지나치게 많은 밀가루 음식에 질릴 대로 질려있었고 엄마는 먹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동안의 관성으로 계속 많은 음식을 하셨고 우리와 계속 마찰을 빚으면서 서서히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명절날 아침엔 전복죽으로 간단히 때우고 점심엔 미역국. 돔구이. 가오리찜. 잘 익은 깍두기로.
저녁엔 조갯국. 새우찜. 나물로 식사를 했다. 해서 이번 명절도 나물 외 남은 음식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명절 다음 날 먼 곳에 사는 친척오빠 부부가 온다는 소식을 받았다.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무나물의 주인들이 등장한 것. 나는 계란을 흰자. 노른자로 갈라 지단을 붙이고 생선을 한 마리 더 구움으로 손님밥상을 준비했고. 그렇게 오색의 멋진 비빔밥상이 준비되었다.
시끌벅적 둘러앉은 밥상 앞에서 아버지는 뿌듯해 보였고 말씀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이 밥상 앞에서 지난날들의 시간들을 되돌아보셨을까.
엄마. 남동생. 나. 그리고. 결혼 후 늘어난 며느리. 사위들이 마주했던 밥상들 그리고 손주들과 마주했던 길고 긴 밥상들을.
이제.
아내는 저 세상으로 떠났고. 아들은 외국에 살고. 딸은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타지에 산다.
오 년간 혼자 밥상을 대한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 밥상은 식탁이 아니라 텔레비전 앞 테이블로 바뀌었다.
그래서.
가족이 많이 그리울 때가 있었을 것이다. 친척오빠 부부와 함께 아버지 집을 떠나던 날
계속 서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던 아버지가 많이 왜소해 보였다.
늙은 부모님을 생각해서 도시로 갔다가 시골로 내려와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참 행복해 보인다. 특히 늙은 부모님들이.
나는 부모님과 늘 가까이 살다 부모님이 늙어서야 떨어져 살게 되다니ᆢ가까이 살 때 늘 간섭하던 부모님이 너무 싫었는데. 시간이 급격히 흘러 아버진 더 노쇠해가고 나도 흰머리가 희끗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