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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미셸 오
Dec 13. 2022
#커피숍에서 만난 기호들
자고로 난 딸아이와 성격이나 취미가 완전히 딴판이다.
난 성미가 급해서 밥도 빨리 먹고 약속 시간에도 먼저 나가 있고 외출할 때 미리미리 시간 계산을 해서
준비한다.
그러나. 내가 한 시간 전에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면 딸은 머릴 감아야 되는 상황에서도 딱 한 시간 전에
일어나서 보일러를 켠다.
딸이
머리를 감을 준비를
시작할
때,
구두만 신으면 바로 대문을 열 상태가 이미 완료된 나는 그때부터 한 시간을 기다린다.
아니 그렇게 해 왔다.
예전에는 느림보 딸을 재촉하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잘 맞춰진 상태다. 그런 류는.
하지만 식습관은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식탁 위엔 늘 두 개의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존재한다.
콩나물. 김치. 된장찌개. 생선구이가 모여있는 공간 하나와 닭가슴살. 계란 프라이와 햄과 억지로 내놓은 채소.. 그것은 깻잎이거나 양상추다. 만약 삼겹살이 구워지면 상추가 달라붙는다.
딸은 생선을 구울 때 "아유 비린내가 심하다~"
라고 말하고 딸이
햄을ᆢ
계란을 굽고 나면 나는
햄의 가공냄새,
계란 비린내를 느낀다.
그 외,
영화를 볼 때도 판이 갈린다.
오늘,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데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다.
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좀 성격이 다른 것이다.
아무튼. 해서 딸은 영화관으로 들어가고 난 쇼핑을 즐기다 커피숍에 앉았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 탓인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 안에서 나는 밀크티를 시킨 후
현재 읽고 있는 책을 꺼냈다.
영화가 끝나려면 한 시간은 더 남았다.
책에 집중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말의 파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눈은 책의 활자에서 벗어나 귀로 간 듯하였다.
옆 자리에서는 "16만 원.... 29만 원..."
뒤에서는
"100만 원.. 30만 원.."
내 오른쪽에서는
"나도.. 엄마"
뒤에서는
"티브이에서 사자고 하는 이유가......."
왼쪽에서는
"안 사도 돼......."
저 멀리에서는 하하 웃음소리. 커피숍의 음악소리. 주문 차임벨 소리... 전체 내용은 알 수 없는 수많은
기호들이 공중에 붕붕 떠 다니고 있었고 그것들은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곤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다가 했기 때문에 전혀 무슨 말은 하는지 스토리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쇼핑몰이다 보니 옷 이야기 가격 이야기 좀 많았다.
이렇게
언어들의 기호를 직접적으로 인식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공기는 사람들이 뱉어내는 음성들을 자잘하게 부서뜨렸다.
난 책을 덮고 멍하니 식어버린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다. 한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처음엔 더워서 풀러 놓았던 목도리를 두르고 코트를 다시 입는다.
역시 밖이 추울수록 실내의 주황빛 전등은 더 따스하게 밝게 빛을 발한다.
멍하니 커피숍 밖의 풍경들을 바라본다.
누군가가 인생은
무의미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의미 있는 일들을 쌓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 여기, 커피숍에 앉아 책을 읽고 밀크티를 마시고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까?
문득. 나이 드신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고 내 육신의 이곳저곳 불편한 것들을 인식할 때
삶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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