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제주도에서 태어난 여자라면 운명처럼 해녀라는 직업을 받아들여야 했다.
정말 아주 뜸하게 물질을 못하는 여자들이 있기는 했는데 그런 여자들은 물질을 잘하는 여자들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해녀들에게는 실력에 따라 그들만의 등급이 존재한다. 상군, 중군, 하군.
상군 해녀는 말하자면 직장에서 꽤 유능한 사람에 비유될 수 있다.
해녀들 중에 해삼을 잘 잡고 전복 소라가 어디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잘 찾아내던 엄마는 제주도 성산포에서 상군 해녀였다.
7살이었던가?
할머니 댁에 머물 때 성산포 앞바다에서 잡은 소라고둥의 그 쫄깃한 맛이 기억난다. 젊은 엄마의 머릿수건에 돌돌 말린 노랑노랑 하게 구운 고둥들. 숯불 냄새와 바다 냄새와 고둥의 냄새가 뒤섞인 고둥의 살점을 뜯을 때 잇몸에서부터 느껴지던 맛.
찬 바닷물에서 나온 젊은 해녀는 장작불을 때는 곳에서 몸을 데우며 갓 잡은 고둥을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얹어놓는다. 고둥들이 장작불 속에서 바닷물을 구슬처럼 토해내며 익어갈 때쯤 여자는 몸을 덥히고 옷을 갈아 입고는 구워진 고둥들의 창자를 떼어낸 후 머릿수건에 쌌다.
그러면 집에서 늦도록 기다리던 자식들은 그녀가 구워다 준 고둥을 씹으며 그들의 어미 몸에서 나는 바다 냄새와 숯불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해녀에게 이런 낭만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해녀들의 삶은 무척 고되고 팍팍한 것이다.
한 해녀가 겪은 실화이다.
상군 해녀들은 그날도 배를 타고 깊은 바다로 나갔다. 깊은 바다 속이라야 물건도 많고 그만큼 수입도 좋다.
배가 바다의 적당한 곳에 엔진을 끄면 해녀들은 저들을 태우곤 온 배에서 하나 둘 바다에 몸을 던진다.
드넓은 바다에 희디흰 둥근 테왁이 띄엄띄엄 떠 있다. 그들은 자맥질을 하면 숨비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망망대해 넘실대는 바닷물 속에서 상군 해녀는 전복하나 와 소라 두어 개를 잡아 올렸다. 물 위로 솟구쳐 오르며 맑은 숨비소리를 해면 위로 길게 내질렀다.
그때여다. 숨비 소리가 고래를 불렀던가. 아니면 바닷물의 물살 때문이었던 가.
해녀의 상체가 갑자기 나타난 고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경을 쓰고 하얀 테왁에 상반신을 얹고 오른손에는 전복 캐는 갈고리를 든 상태였다.
순식간이었다. 고래 뱃속으로 떨어질 찰나. 그녀는 그 짧은 순간 본능에 의해 들고 있던 갈고리로 고래 입안을 마구 찍어대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정신없이 휘둘렀을까. 해녀의 몸뚱이를 반만 입에 넣었던 고래는 입안에서 무작위로 쏘아대는 갈고리 때문에 입안의 것을 뱉어내고 말았다.
수 십 년 돌에 붙은 전복을 캐고 작살로 헤엄치는 고기를 명중해서 잡아내던 장인의 기술은 정확히 고래의 입안 이곳저곳. 입천장이며 혓바닥을 찍고 또 찍었던 것이다.
상상하건대 식겁한 그 고래는 한 달 간 식음을 전폐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해녀를 뱉어낸 고래는 벌에 쏘인 듯 도망가고 고래 입 속에서 살아나온 후 그녀는 회생의 기쁨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에 썼던 물안경은 부서지고 갈고리에는 고래의 피와 살점이 엉켜있었다.
걸음을 떼면서부터 바다와 놀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물질을 해왔던 해녀들에게 바다는 이미 모든 비밀을 가르쳐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래의 센 입김도 능히 견디었으리라.
아무튼 상군 해녀의 승리였다.
헤밍웨이의 노인이 몇 날 며칠을 거대 물고기와 줄다리기를 할 때 한국의 해녀는 단 몇 분만에 고래 입속으로 돌진해서 갈고리로 고래의 입안을 누더기로 만들 버렸다.
그렇게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바다에 치를 떨 법도 하건만 그녀는 그 후에도 계속 바다에 나갔다.
어쩌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해졌을지도.
고래가 해녀에게 당해서 도망갔다는 사실은 제주바다 근교 고기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을 게 분명하고 특히 고래들 사이에서 해녀는 위험물 1호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용감한 상군 해녀는 딸도 해녀로 만들었다ᆞ
그 딸의 친구가 바로 나의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