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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Sep 12. 2023

꼬맹이 새를 보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느껴지긴 하지만 아직도 한 낮은 뜨겁다.


 오전 일찍 8시 예배를 드린 후 바람이 선선한 듯하여 오랜만에 산책로를 걸어보자 싶었다.

 무성한 나무 아래 그늘을 걷노라니 확실히 걷는 게 힘들지 않았고 주말이기도 하여서인지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10년은 넘게  한 곳에서 뿌리는 내린 무성한 나뭇가지를 드리운 산책로는 걷기에 좋았다.


 길을 따라 걷다가 아주 예쁘고 조그만 새를 보았다.

 흔들리는 가지에 앉아 있는 모양새가 어찌나 예쁜지 사진기를 갖다 댔는지 요놈이 그걸 알고 포르르 한 걸음씩  날아간다. 또 따라간다. 또 그만큼 날아간다.

 사진 두어 장 찍고 그냥 걸어와버렸다.



 그  작은 새의 그 동그랗고 새카만 눈이 얼마나 야무지고 귀엽게 생겼는지.. 그 작은 부리로 먹이를 쪼고 그 동그란 몸 어딘가에서 힘이 나서 나는지.. 신기하다.



 그렇게 나무그늘을 지나 달리아 꽃길을 걷다가 나는 고함을 빽 지르며 앞으로 펄적 뛰었다.


 "아고 깜작이야"


 옆에서 걷던 딸이 많이 놀란 모양이다.


 지렁이 한 마리가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에서 벌겋게 달은 몸을 요동치며 펄쩍펄쩍 뛰고 있었던 거다. 

지렁이의 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그 단단한 기세가... 팽팽한 탄력으로 튀어 오르는 모양새가 무섭다.

 나는 지렁이를 피해 바삐 걷는데 딸은 이리저리 길가를 주춤거리며 찾는다.


 "뭐 해?"

 "꼬챙이"

 "뭐~? 그냥 냅둬. 자연의 법칙대로.."

 "아냐. 인간의 도움으로 사는 수도 있다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딸이 꼬챙이를 찾는 동안 길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지렁이를 구해주지 않으면 길을 뜰 것 같지 않은 딸을 보면서 나도 벤치에 앉아 나무꼬챙이를 찾았는데 

벤치 뒤에 나무 꼬챙이가 삐죽하니 나와 있는 게 보였다.

 딸은 내가 준 그 꼬챙이에 지렁이를 걸어서는 저 아래 하천 풀숲으로 던져주었다.


 어릴 때 지렁이는 유용한 동물임을 배운 세대고 또 지렁이 모양 젤리를 먹었던 세대라 그런지 지렁이를

싫어하지 않고 살려주려는 딸을 보니 환경의 힘이 참 크다 싶다.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색색의 지렁이 모양 젤리를 사서 내 앞에 그것 한 개를 꺼내 흔들 때도 난 싫어했다. 과자를 지렁이처럼 만들다니.. 원. 그렇게 한탄했었다.


 난 지렁이가 지렁이라서 그냥 싫은 사람이다. 그러나 지옥불에 던져진 지렁이를 구원해서 쉴만한 물가로 던져준 딸이 착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뜨겁게 달궈진 시멘트 바닥엔 인간에게 구원받지 못해 납작하게 말라버린 지렁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기 산책로를 걸을 때 가장 두려운 건 그런 지렁이를 못 보고 밟는 것이다. 자잘한 개미군단도 무섭고 이리저리 잘라져서 말라빠진 지렁이 잔해도 그렇고..

 그래도 여기에서 가끔 출몰하는 뱀만 마주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난 예전에 강가로 기어가는 작은 뱀을 보고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적이 있는데 지인은 산책 중 뱀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눈이 좀 침침한 데다 뭔가 밧줄 같은 것이 길게 늘어져 있길래.. 세상에 뱀이잖아.. 서로 눈이 딱 마주쳤지 뭐야.. 나도 놀라서 도망가고 저도 놀라서 도망가고.."


 산책로에서 마주치는 예쁜 새들과 꽃들과 길고양이들을 보는 재미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기다란 생물들을 보면 산책할 기분이 싹 가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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