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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Jun 13. 2024

적산가옥과 나베요리

진*  가면 적산 가옥의 거리가 있다.

5월의 말.

우리는 예라가 모는 아주 날렵한 벤*를 타고서 진*로 달려갔다.

우리 교회의 전도사님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큰 거리를 벗어나 거리 모퉁이의 낡은 건물의 주유소를 돌자마자 좁은 거리가 나타났고 오래된 집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어디선가 세월의 묵은 냄새가 올라와 한껏 들뜬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더 설레게 하던 그때,

예라가 차를 세우려고 백미러에 시선을 줄 때.  저 앞에 가로로 길게 지어진 2층의 일본식 집이 나타났다.

우리는 길로 난 미닫이 출입문이 4개로 나란한 곳의 문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세 번째 집이 전도사님 집이랬어. 옆에 선 지숙이가 말했다. 우리가 주차장을 벗어나는 순간 그 세 번째 문 앞으로 전도사님이  나타났다. 하얀 티셔츠를 입고서.

언제나 짙은 색 정장 차림으로 우리를 맞아주던 교회에서의 차림이 아닌 평상복.

드르륵 소리 나는 길쪽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신발을 벗고 올라서는 디딤돌에 자잘한 색색의 타일들이 깔려있다.

난 이런 자잘한 색색의 타일들이 정겹다.

또 드르륵 안으로 향한 또 한 개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전도사님의 실내가 드러났다.

회색과 흰색의 깔끔한 주방. 그리고 화장실. 입구 문 옆의 작은 방에 가득한 책장과 푹신하게 보이는 큰 소파와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조금 가파르게 연결되어 있었다.

와~~ 오호~~ 우리는 탄성을 질러대며 구석구석 구경하기에 바빴다.

전도사님은,

예전 집의 구조변경 없이 싱크대를 바꾸고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집의 운치는 살아있고 현대식으로 바꾼 주방과 화장실이 깔끔했다.

2층은 다디미 바닥만 장판으로 바꾸었을 뿐, 종이 미닫이 문은 예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도사님 집을 일시에 둘러본 후.

싱크대 앞, 6인용 식탁에 앉았을 때, 주방을 통한 작은 창으로 미세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좀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한 번씩 커튼이 미세한 바람에 날릴 때마다 마당에 심긴 늙은 장미나무가 얼핏 보였다. 분홍색의 능소화꽃 같기도 하였다.  또한 마당으로 통하는 문에는 깨끗하게 세탁된 하늘색 줄무늬 커튼이 나무봉에 걸려서 바람 한 점 없는 실내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곧이어 우리가 들어왔던  문이 열리며 은혜와 수진이 들어섰다.

갑자기 실내는 6명의 여자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시끌벅적벅적벅적~~~


나는 몇 년 전에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푹 빠져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영화에 나오는 한 여름 시골집의 습기 찬 실내와 주인공이 직접 화덕에 구운 빵과 함께 그 일본의 사계절을 즐겼었다. 여름 편에서는 식혜를 시켜 먹었고 토마토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가을에는 밤을 까서 조림을 만들기고 했고-비록 실패하였지만은-호두밥도 만들었고  주인공이 사용하던 일본식 밥솥은 나중에 바닥이 벗겨지도록 밥을 해 먹었다. 겨울엔 카레를, 그렇게 지내다 보니 우리 집에 식기는 어느덧 일본 그릇으로 다 바뀌어 있었고 겨울에 딸과 나는 한텐을 사서 입고는

춥지도 않은 실내서 추운 척 분위기를 내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3년.

나는 이제 그 영화를 보지 않았고 내 주방에 일본식 그릇도 사라졌다.


그런데 오늘,

전도사님의 집을 들어서는 순간 예전에 내가 느꼈던 일본의 그 감성이 되살아 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전도사님과 함께 성경 공부를 마친 후.

전도사님이 오징어 부추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소한 부추전의 냄새가 가득 찬다. 부추전 한 개가 접시에 놓였을 때 그 한 개의 부추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소고기 나베가 식탁에 올려졌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탄성을 질렀다. 음식의 맛이야말로 삶의 진실이다.

고소하고 바삭한 오징어 부추전도 맛있었지만 간간한 맛의 일본식 소고기 나베는 내 입에 딱 맞는 요리였다.

나는 잃어버렸던 탐심을 찾아냈다. 내 옆의 나보다 어린 동생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내가 열심히 먹고 싶어 그들의 그릇에 음식을 먼저 열심히 퍼 주었다. 그리고 한 입.

"그 소고기 비싼 거예요~"

전도사님의 귀여운 자랑을 귀로 들으면서.. 네네~~ 그러면서.

정사각으로 썰린 배추 사이사이에 얇게 썰린 소고기가 겹겹이 종잇장처럼 끼워져 있어서 사 먹는 음식에 길들여 있던 내 혀는 입안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부추오징어 전. 아까부터 전도사님은 부추전을 계속 굽느라 식탁에 오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부추와 오징어의 조합이라니 아직도 성이 안 찬다. 젓가락으로 찢은 부추전을 간장에 찍은 후 입에 가져간다. 혀에서 느껴지는 부추와 오징어의 환상적인 콜라보.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함부로 잡담을 할 수 없다.

다른 때는 사진부터 찍는다고 난린데 아무도 사진기를 갖다 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면 이 맛난 나베를 덜 먹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젓가락을 힘껏 놀려야 하는 법, 그 법은 바로 본능의 법이다.

그리고 이어진 너구리똥 커피.

15년 전 제자반을 할 때는 다람쥐똥 커피를 마셨었다. 그런데 이번에 너구리똥 커피라니.

제자반을 할 때마다 최상의 커피를 맛본다.

작고 앙증맞은 에스프레소 잔에 커피가 내려질 때. 이젠 콧구멍이 벌룸벌룸 춤을 춘다.

우와, 향기가 미친 듯이 퍼진다. 커피 향에 꽃향기를 마구 섞은 듯한 향기다. 커피의 맛은 산미가 있는 단맛도 느껴지는 와인맛이다.

전도사님은 비싸게 주고 샀다면서 우리들이 먼저 시식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렇군요, 전도사님. 우리 제자반을 이렇게 사랑해 주시다니요.

우리는 눈앞에 놓인 커피의 향기에 순종적인 자세가 된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지.

아무렴 우리는 그 맛나고 귀한 커피 앞에 복종할 뿐이다.

우리는 맛난 음식에서. 귀한 커피 향에서 순종의 자세를 배운다.


그렇게 신나는 식사를 마친 후,

우린 전도사님 집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반들반들하게 닳은 그 비좁고 가파른 계단에 앉아서.

우리는 우리의 엉덩이를 댄다. 수없이 오르고 내렸을 그 삶의 흔적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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