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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Jun 27. 2024

독수리같이 날아올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장마가 시작되었다.

거실창으로 내다 뵈는 저 멀리에는 안개가 가득 서렸다. 창으로는 습기가 스며들고 문을 열면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실내로 쳐들어 온다.

날씨는 좋을 때는 좋은 대로 -한동안은 선선하고 여름의 태양도 강렬했기에- 오늘같이 비가 가득 차게 내리는 날도 좋다.

내가 이전 글에도 썼듯이 나는 올해 2월에 교회서 하는 제자반 훈련을 시작했다

총 5명인데 나 빼고는 다들 40 초반들이다.

그들 넷과 나는 나이차가 많이 난다.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이 좀 되었었다. 세대차이가 나면 어떡하지? 하고.

예라. 지숙. 은혜. 수진.

이 네 명은 다들 믿음의 족보를 가지고 있고. 또 다들 뱃속에서부터 찬송을 들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늦은 나이에 믿음의 길로 들어선 나에 비해 무척 차분하고 안정적인 믿음의 터를 가졌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의 크기랄까.... 그런 면에서는 내가 한 수 뒤진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내가 그들보다 많은 것은 이생의 나이일 뿐. 믿음의 교제 안에서는 나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는 말도 된다.

우선. 예라는 아주 날씬한 몸매에 피부가 하얀 친구다. 귀여운 두 아들을 데리고 아주 열심히 산다.

첫 수업 때 자신이 한 독서 과제물에 대해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미리 언급을 하고선 너무 뛰어난 감상문의 실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는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첫 수업 때 지각을 하고 말았다. 오전 중에 카카오 택시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동네는 버스도 그렇고 지나다니는 빈 택시를 거의 볼 수 없는 동네다.

그날. 지각한 나를 보고 " 집사님 제가 태워 드릴게요."라고 선뜻 먼저 제안한 사람도 그녀다. 나를 태우려면 예라의 집과 우리 집 사이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예라는 교회를 지나쳐 동네를 한 바퀴 돌아야만 한다.  그리고 첫 수업을 끝낸 후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러 갔는  재빠르게 젓가락이며 수저며 냅킨을 챙기는 그녀를 보면서 감동했다.  단. 그녀는 자신이 대학원까지 나와서 전업주부로만 사는 것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다음은 지숙이다.

지숙은 키가 우리 중 키가 제일 크고 또 웃음소리가 크다. 그녀가 교회 복도서 웃으면 교회 계단을 통해서 그녀의 웃음소리가 교회 안에 서라운드로 퍼진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가 참 듣기 좋다는 것을 본인은 알까ᆢ?

지숙은 예라보다 두 살 많은데 늘 친언니처럼 예라에게 조언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다른 사람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예라가 좀 생활 속에서 부족하다고  한탄스러워하면

" 아냐 예라야 너는 잘하고 있어"

그러면서 힘을 준다.

예라의 차를 타고 갈 때면 늘 예라 옆에 지숙이가 먼저 타고 날 태우러 오게 마련인데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면

늘 그런 식이다.

예라: 오늘 어쩌고 저쩌고.... 난 참 부족한 것 같아"

지숙: (잠잠히 듣다가 진지한 얼굴로) 아냐 예라야.(조금 쉬었다가)  그렇게 생각하지 마.

라고 부드럽지만 아주 단호한 어조로 예라를 위로한다.

난 뒷 좌석에 앉아 소곤소곤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의 예라와 씩씩하고 큰 지숙의 목소리를 들으며 갈 때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제자반 첫 대면 때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는데 지숙은 자신의 집이 4대째 예수를 믿는 집안이라고 해서 또 나는 경악했다.

난 우리 집안의 1대다.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던지.... 증조 때부터 이어져온 기도의 열매가 지숙이를 그렇게 깊고 성숙하게 만든 걸까?

나는 그날 이후 지숙이를 사대부집 자녀라고 부르고 있다. 요즘은 집안에 심각한 일이 있음에도 기도로 믿음으로 내색 없이 잘 버티며 간다. 지숙이의 눈동자를 보면 자잘한 보석들이 그 안에 가득 찬 것처럼 반짝거린다.

 은혜도 삼대째 예수를 믿는 집안이라고 하였다.

그녀의 분위기는 뭐랄까. 봄날의 아지랑이를 대하는 것처럼 약간 몽롱하기까지 하다.

얼굴 표정도 부드러운 데다 목소리도 살랑살랑 봄바람 같다. 믿음으로 굳게 서 있는 모습이 어쩔 땐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제자반 시작하기 전 교회서 먼저 시작예배를 드린 후 남아서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제자반 중 내 또래는 단 한 명도 없고 내 눈에는 나이차 많은 여동생 같은  집사들을 보면서 '제자반 훈련을 잘할 수 있을까' '괜히 한다고 했나?' 등등 심각한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시끄럽게 재잘되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나는 살며시 그 장소를 빠져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사진 같은 건 안 찍어도 되리라 싶었고 저들끼리는 친한 것 같은데 나만 안면식도 없고 되게 뻘쭘해서였다.

그런데 누군가 쪼르르 내게로 다가왔다. 은혜였다.

"집사님 사진 찍고 가세요."

아니 언제 내가 나가는 것을 보았을까? 나는 하는 수 없이 은혜가 잡는 바람에 같이 사진을 찍었었다.

아무래도 은혜는 작년에 잠시 다락방에 같은 순원이었기 때문에 안면식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으나 같이 시간을 지내고 보니 은혜는 정말 주변 사람들을 두루두루 챙기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수진은 우리들보다 좀 늦게 합류했는데 새로 오신 부목사님의 사모다.

사모라는 의식 없이 우리들과 잘 융화되는 중이다. 충청도와 강원도를 두루두루 살다가 온 덕분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건지 되게 착하고 배려심이 깊다.

내 코트가 의자에서 떨어졌을 때-나는 몰랐음-

" 집사님 이 비싼 코트를 이렇게 떨어뜨리면 어떡해요" 라면서 내 코트를 들어서 내  옆 의자에 차분히 개겨 놓아주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후 수진은 변함없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모일 때면 수진은 사진을 늘 찍는데.

배가 고픈 상태에서 맛난 음식을 앞에 두면 그녀는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한다.  같이 밥을 먹다가 누가 말을 안 한 것 같은데? 하고 고개를 돌려보면 수진은 벌써 밥 한 그릇을 말없이 비우는 중인 것이다. 수진의 그런 모습은 귀여운 미니미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맛난 음식 앞에서는 사진 같은 건  접어둔다.

 수진의 얼굴은 배우 변우민을 흡사히 닮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혹시 변우민의 숨겨진  여동생인가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만큼 비슷하다.

는 나이가 제일 많은 왕언니다.

그녀들은 나에게 전부 "미셸~"혹은 "미셸 맏언니"라고 부른다.

그들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성미가 꽤 급하고

잘 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잘 울었던 사람이었다. 그것도 훌쩍이면서 절대 안 운다. 소리 내어 엉엉 운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후 나는 열 배나 더 잘 우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어디서 그런 눈물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물을 좋아해서 그런 건지 잘 울어서 물을 잘 마시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즘은 시험기간이라서 월요일마다 자유롭게 하는 기도회도 못 갔다. 기도회라기보다는 각자 예배당 안에서 자기 자리를 잡고 기도하다가 간다. 내가 먼저 " 기도하자"라고 해 놓고 제일 많이 빠졌다.

그런데 이 넷은 성실히 기도하러 온다.  오늘도 기도를 마친 후 식사와 차로 교제를 나눈 사진을 카톡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겹겹이 쌓일수록 정드는 이 네 명의 여자들ᆢ아니 동생들.

언제 우리 집에 초대해서 멸치조림에 밥 한번 같이 먹어야지ᆢ


사랑하는 믿음의 친구들이여... 제자반 마칠 때면 우리 모두 독수리같이 날아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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