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다 해변은 매우 고운 조개껍질 성분이 섞인 천연 백사장이라 한다. 모래는 첫인상이 아주 잘 갈린 부드러운 미숫가루 같았다. 그렇지만 바닷물에 섞여들지 않고 오랜 세월 땅에 엎드린 모래밭이다. 그래서 모래 위를 걸을 때는 발이 푹푹 빠지지 않고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수평선으로부터 밀려드는 바다는 거무스름한 푸른빛을 띤. 어두운 옥색빛을 보일 듯 말 듯 내비친다.
햇빛 아래에서는 이 바다가 밝은 에메랄드 녹색 빛을 띤다고 하던데 하필 비가 올게 뭐람.
해변은 정말 한적하고 바다의 깊이가 얕아 수영하기에 딱 좋은 바다다. 모래 위를 맨발로 걷고 모래 속에 발을 넣고 마구 비비고 싶다. 뜨거운 햇살에 등을 태우고 시원한 에메랄드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빗발이 날리는 쌀쌀한 해안가. 그래도
잔잔한 물결이 우리 발밑에서 얇고 부드러운 천을 끌듯 모래사장을 쓸고 가기를 반복한다.
작년 호주에서 봤던 광대한 바다와는 다른 느낌. 다른 색이다.
이 바다가 낯설지 않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오른쪽 바다는 어릴 적 놀던 동네 앞바다와 흡사하다.
모래가 있었고 넓적 바위가 있던 그곳에는 시커먼 바다표범들이 가득해서 아예 접근을 못했다. 바위가 물에 잠겼다가 썰물이 되면 그 바위 틈새에는 이것저것 주울 것들이 많았는데 말이지.
어쩌다 그 바위에 바다표범이 몸을 턱 걸치면 그날로 바위 쪽으로 가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것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그 바다표범들이 실제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인간이 가공하지 않은 자연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놀던 바다는 이제 매립되고 건물들이 꽉 들어찼다. 바다는 저 멀리 쫓겨났고 자연은 힘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그 바다에 가서 예전처럼 힘도 위로도 얻지 못한다.
이성적인 인간이 자연을 가공하면서 자연 본래의 힘을 빼앗았다고 생각한다.
난 이성인 로고스보다 본래의 실상인 피시스가 좋다. 아무래도 이성적인 인간은 로고스를 뛰어넘어 피시스에 도달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미우라 해변이 좋다. 그래서 이 바다를 맘껏 응시한다.
넘실대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도 조용해지는 마음의 길.
여러 갈래로 갈라졌던 마음들을 한 군데로 쓸어주는 바다. 하나같이 사람들은 홀로 바다를 마주한다. 무슨 생각들을 모으는 것일까.
잠시 서서 바닷물 소리를 귀에 담는다.
조용히 찰싹이는 바닷물.
입을 다물게 만드는 바다. 가슴으로 마주한다. 바다의 언어는 바다 그 자체다.
그래서 바다를 마주하는 이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일상을 떠나온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정말 잘 왔다고 바다는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 넷은 바다를 떠나기 전 엎어지면 닿을 듯.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생긴 바위섬. 그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다시 보니 잘 구워진 까눌레처럼 보이기도 하고. 썰물때면 그 섬으로 걸어서 갈 수도 있겠다. 어떤 양분을 먹고사는지 섬 머리 위에는 나무랑 풀도 자랐다.
정해진 시간을 채우고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오면서 보니 푸드트럭에서 알 수 없는 음악이 나온다. 그것도 아주 낮은음으로. 관광지를 방문할 때마다 크로켓. 찹쌀 붕어빵 같은 일본식 간식들을 놓치지 않고 사 먹었는데 이번 미우다 해변의 푸드트럭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날은 더 흐려졌고. 비가 또 흩날렸다
기후가 좋지 않은 관계로 우리들의 배편이 30분 앞당겨졌단다. 그리고 우리가 탈 배가 오늘 막배라고 했다. 낼모레까지 대마도행 모든 배가 출항을 못한다고. 저녁부터 폭풍우가 오려나보다.. 우리가 탈 배는 오후 3시 30 분. 가이드는 파도가 셀 것 같다면서 멀미약을 꼭 먹으라고 버스 안에서 반복해서 당부를 한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올 때 탔던 거친 바다를 지나쳐야만 한다. 이 바다를 보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이 평안한 바다를 위해 치렀던 대가였나?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일상의 고마움을 알라고 바다는 다시 우리에게 거친 바다를 선물할 것이다.
이제 버스는 미우라 해변을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