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붉은 인간의 최후> 2015년 노벨상 수상

by 미셸 오


책의 서문에서 소개한 작가의 프로필.


‘작가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로 우크라이나 출생이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모은 이야기를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소설처럼 읽힌다. 그래서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때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꼬리를 슬슬 내리던 작년 10월이었다. 종이책만 고집하던 내가 책장에 쌓여가는 책들. 언젠가는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꽂아두었던 책들이 거의 곰팡이가 득실득실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알라딘에 팔기도 하고 엄청나게 버렸다. 이후 나는 이북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띈 이 책.

책의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책의 장들이 모두 등장 인물들의 말을 녹음해서 옮겨 놓은 것처럼 인용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소설처럼 읽히는 마법 같은 문장들을 보면서 나도 이런 소설을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을 만큼 읽기에 힘든 책이다. 정서적으로.

역사 속에서 고통받았던 인간들의 삶-그들의 선택도 잘못도 아닌 이유로-을 읽어내는 것은 독자로서 고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살게 될 거라는 공산 낙원의 허상을 믿었던 소비에트의 민중들.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이 그들의 입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생동감이 있다. 마치 그들의 육성을 듣는 느낌이랄까.

작가의 소설이 왜 '목소리 소설(Novel of Voice)'로 불리는 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급격한 사상과 체제의 변동 속에서도 민중들이 걸었던 희망과 기대는 여지없이 반복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경험했던 한국의 역사도 다사다난했었는데 러시아 민중들은 더 가혹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었다.

'인간이 스스로 택하지도 않은 환경인데 인간은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가

인간의 영혼을 구원했다는 신은 왜 이 땅에서의 인간의 고통에는 침묵했던가?'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며 돈의 세계로 몰린 사람들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린다. 빈부격차. 자유에 적응하지 못했던 옛 소비에트 군중들은 공산주의 시절에는 자유는 없었지만 그들에겐 공동체가 있었다고 말한다. 인문과 철학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개방된 자유의 물결은 많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되려 고통스럽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자본 앞에서 그들이야말로 턱없이 가난했음을 깨닫기도 한다.

한편. 예전의 소련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젊은이들-그들은 공산국가를 경험하지 않은-과 현재의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젊은이들의 갈등과 대립도 다룬다.

나는 여기서 그 시대를 말하는 두 개의 대화를 인용하겠다.


“흐루쇼프도 곧 공산주의가 올 것이라고 약속했고. 심지어 고르바초프는 맹세까지 했어요. 그 사람 정말 말솜씨가 일품이었지요............ 그리고 지금은 엘친이 맹세하고 있어요. 약속을 못 지키면 철로에 드러누울 것이라고도 했고..... 이젠 난 다 늙었어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모두가 거짓말을 했고 사는 건 더 팍팍해졌어요. 또 조금만 더 기다려, 조금만 더 참아, 그렇게 계속 조금만 더 기다리고 참으라고 뻔질나게 말들을 하더군요.


”우리들은 수용소에서 복역했고 전쟁을 치를 때는 시체로 천지를 덮었어요. 맨손으로 체르노빌에서 핵연료를 퍼냈지요. 그랬는데 지금은 무너진 사회주의의 폐허위에 앉아 있어요. 전쟁이 끝난 뒤의 모습처럼 우리는 얻어터지고 기진맥진한 상태예요.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요. 고통의 언어요. “



2015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이 소련과 공산주의의 몰락을 지켜보고 그 후의 사회를 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경외의 표현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원제는 ‘세컨드핸드 타임’ 이지만 한국어로 번역 후 '붉은 인간의 최후'로 바뀌었다.

역사 속에서 개별적인 인간들의 삶은 보편적이지만 특수하다. 그런데 역사는 그들의 개별적인 삶을 민중이라는 단어에 가두고 외면하지만 그런 인간의 삶에 경외를 보내는 작가들이 있기에 우린 이 땅을 살다간 수많은 민중들의 삶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앞장에 인용된 문구를 싣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악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안의 눈먼 수행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정신적으로 방관한 선의 추종자들에게 있다.


표도르 스테푼 ‘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못할 일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