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호와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셸 오 Dec 22. 2015

#에스겔의 환상

   물이 되어 흐르게 하소서

에스겔 37장 1-14절


 에스겔은 성령에 이끌려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간다. 그 골짜기의 뼈들은 무척 말랐고 수없이 많았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고 그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뼈들에 대하여 대언하라 하시는데 즉 뼈들 위에 힘줄이 돋고 살과 가죽으로 덮고 생기를 넣어 살아나리라는 말을 하게 한다.

그대로 하니 그 뼈들이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히며 생기를 향해 대언하니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서는데 큰 군대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뼈들이 이스라엘 족속이고 그들의 뼈가 말랐고 그들의 소망이 없어졌고 그들이 다 멸절되었다 하니 에스겔에에게 또 대언하라 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영을 그들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고국땅에 둘 것이라 하신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이룬 줄을 알리라 하셨다.




여기서 첫째 골짜기의 뼈들은 여러 의미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생명이 없다. 절망에 빠져있다. 무덤속이니 미래가 없다. 그리고 마른 뼈라 하였으니 팍팍하고 건조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골짜기에 널린 뼈들은 갈등과 절망에 빠져있는 죽은 공동체가 아닐까 한다.

강은교 시인도 <우리가 물이 되어> 란 시에서 물로 만나자고 하였다. 갈등하고 화합하지 않다보면 불에 다 타고 숯이 된 뼈만 남는다고 하였다. 절망하고 좌절하면 또 화병(火病)이 생긴다고 하고 또 그 한자어가 불이다.

두번째는 에스겔 선지자다.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절망에 빠진 뼈들을 살리는 여호와의 도구로 쓰임받는다. 그는 인자. 즉 사람으로서 죽은 뼈들을 살아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께서 미리 주신 권능을 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움직이고 단지 대언할 뿐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할 뿐.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권능으로 능력을 대신 발휘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뿐이라고.

그러나 차이는 확연하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부으셨는가? 그가 하나님의 영에 따라 움직이는가?

이러한 기준이 성도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시지만 사람을 통해 대언하신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전에 그분의 권능으로 미리 입혀주시고 그분의 영으로 움직이신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말씀은 대언을 통해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에도 마른 뼈들이 서로 붙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였다. 생기는 없었으나 육체는 살아난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영적인 부분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전에는 육신과 혼은 있으나 영은 죽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이 깨어나 생기있는 사람이 된다. 즉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게 하시니 살아움직이고 영적으로 죽었던 영혼이 소생하며 절망에서 희망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곧 이스라엘 .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 후그들은 그들의 뼈가 마른 것을 보고 그들의 소망이 없는 것을 알게 되며 그들이 다 멸절된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처한 무덤 속 같은 상황에서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 땅 즉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그들의 속에 하나님의 영(성령)을 두어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며  앞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서의 사회적 갱신 의미한다.

이렇게 변화되는 것이 개인이든 사회든 오직 하나님의 영이 내주할 때 가능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부터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내 마음이 삶의 불화로 속에서 메말라 가뭄이 들고 메마른 뼈가 되어 골짜기에 널부러진 때가 어느때였던가.

아마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삭막했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내 영은 죽어 있었고 생기를 잃어갔으며 삶에 바짝 찌들려 납작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마음이 삭막하고 좁아지고 뼈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 또는 그리스도인들의 대언을 통해 나를 말씀으로 입히시고 생기를 넣어 살아나게 하셨다. 사막같은 내 마음에 습기가 배어들고 그러다가 성령의 강이 흘러넘치기도 하였다.

살아남기 위해 딱딱하게 굳었던 뼈들이 생기를 품고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 되었다. 아담의 뼈에서 이브가 탄생하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몸 전체에 엑스레이 광선처럼 쏘아졌고 내 어긋났던 뼈들이 자리를 잡고 살이 붙고 가죽이 생기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형상을 입게 되었다.

그렇게 생기를 얻어 살아난 후에야 내가 이전에 소망없이 살았고 살았다 하였으나 죽어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며 빛이다. 그 속도는 우주에서 빛이 비치는 시간과 동일하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영이 소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게 되었다.


마가복음 2장 22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낡은 가죽부대같은  우리의 마음이  새부대처럼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인  새포도주를 담을 수 있다 .

그러나 그 이전에 새 포도주, 즉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야 술이 제대로 발효가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른 뼈를 살릴 길은 하나님의 말씀외에는 길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새 부대를 만들면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사막같은 마음에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기가 부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는 새 부대가 되기 위해 말씀을 소홀히 하지 않고 묵상해야 함에도 게을러지곤하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슬슬 마음이 굳어지려 한다.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대언자들을 일으키시고 나를 향해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하다.

불이 되지 말고 물이 되어 만나자고.(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인용)

설령 잠시 말씀을 소홀히 할지라고 삶 속에 개입하셔서 내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때마다 무척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 바람처럼, 공기처럼, 늘 내 옆에 계시는 하나님의 고마움을 잊었다가 느낄 때면 내 안에 생기가 솟구쳐 오른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생기없이 어찌 살았다 하리오.





매거진의 이전글  #에티오피아 내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