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의 온기

by 미셸 오

오랜만에 시장에 갔다.

비좁은 인도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장날이라고 거리에 열을 지어 앉은 장사꾼들.

무엇을 파는고 하니

고구마. 배추. 검은콩. 검은 쌀. 마늘 깐것, 등등을 한 그릇씩 담아놓고 팔고 있다.

하얀 머릿수건을 쓴 할머니는 집에서 키운 것인지 소국 몇 다발을 묶어 놓고 야채와 같이 팔려고 내놨다. 그 옆에 찹쌀, 좁쌀, 감자 등 속이 한 봉지씩 담겨있다.



처음 이 곳에 이사 왔을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어린아이를 둔 새내기 아줌마.

해산물 시장에 들러 싱싱하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고기 얼마나 해요?"

라고 묻자마자 고기가 순식간에 검은 봉지에 담겼다.

"자~ 만원."

고기 장수 아줌마는 검은 봉지에 담은 고기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그것이 뭔 의민줄 몰라 멍하니 있는데

씩씩하게 아줌마는 대야에 담긴 고기 한 마리를 더 담아주면서

"봐라 한 마리 더 넣었다. 딴 데 가봐도 똑같다."

지금 같으면야 같이 덩달아 무시하며 넘어갔으련만 이제 세상살이를 배우는 초보 아줌마에게 그 장사꾼은 그저

닳고 닳은 못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 그냥 물어보기만 한 건데요."

나는 다소 황당하고 기분 나쁘다는 투로 응대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뒤통수에서 그 장사꾼의 욕이 한 바가지 쏟아졌다.

"아따 ~사지도 안 할 거면서 묻기는 뭘 묻노?"

다른 곳으로 갔으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아줌마는 아예 가격을 묻자마자 도마에 고기 대가리를 싹둑 잘라버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토막 난 고기를 들고 터벅터벅 돌아오기도 했던 적이 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이 곳 사람들의 성정을 알고 난 후에는 장사꾼들의 인상을 보아가며 가격을 묻고 흥정하고 사게 되었다.

대부분 객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의 통과의례처럼 겪는 시장의 장사꾼 아주머니들의 무례함도 이제 그러려니 하게 된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예전에 살던 곳은 아파트 앞 슈퍼에서 두부니 콩나물 같은 것들을 같이 팔았는데 간혹 두부 반모씩을 당연하게 사가고 또 팔기도 하였던 것이라

하루는 집 근처 부식가게서 두부 반모를 달라고 했다가 혼난 적이 있다.

"아이구야~ 두부 반모 가지고 어디 쓸라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던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놀라 부식가게를 슬그머니 나온 적이 있다.

대도시에서 알뜰히 먹을 만큼만 소비하던 습관이 여기 사람들하고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이 곳에서 살면서 나름 깨닫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하고 고깃배들도 많고 어장도 많은 이 곳은 부유한 도시였고 그만큼 사람들의 씀씀이도 크다는 것이다.

몇몇 독불장군 같은 사람들 외엔 모두가 그렇게 무례하진 않았고. 소도시에 오래도록 살아온 상인들이 마주하는 손님들은 거의가 한 집 건너 친척이고 지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을 위해 손님에게 살갑게 굴 필요도 없었던 것이리라.

간혹 낯선 이방인에게 홀대를 하다가도 차츰 얼굴이 익고 단골이 되면 바로 이모. 언니. 엄마로 호칭이 바뀐다.

그리고 그들의 거칠음도 대충 웃고 넘어가게 되어있다.

무엇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손이 크다.

옆 집에 떡을 나누어도 큰 접시에 잔뜩 담아오고 고깃배를 타는 이웃을 만나면 고기를 한 상자씩 얻어먹을 수 다.

그뿐인가. 다들 텃밭이 있어서 봄이면 봄동이니 상추니 넘치도록 갖다 주고 겨울 김장철에는 배추와 무가 한 자루씩 오가는 곳이다.

그렇게 십 년을 넘게 살다 보니 나도 덩달아 손이 커졌다.

가까운 사람끼리 맛난 밥을 즐겨 사고 이름도 모를 세시풍속을 지키며 그 핑계로 떡을 많이 만들어서 푸짐하게 나눈다.

교회만 해도 조그만 기쁜 일이 있어도 떡을 해서 온 성도들에게 나누니 점심때마다 떡이 그치질 않아

이곳의 떡집은 일 년 내내 호황인 듯하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거의 이곳 사람들의 성정은 겉으로는 거칠어도 투박한 성품만큼이나 정이 도탑다. 속속 숨어 있던 토박이들을 만나면 그들도 가까운 친척들과 얽혀있어 익명의 자유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 나름의 애환도 있다.

시장에 가서도 나쁜 성질을 부리는 상인들이 아직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 에게는 안 가면 그뿐.. 그 외에 착하고 어진 사람들이 더 많다.

게다가 큰 대형마트가 두 개나 들어온 이후 전통시장의 상인들은 예전만큼 불친절하지도 않게 되었다.

시장 바닥에 앉아 겨울채소와 된장. 고추장. 김치 담근 것. 깻잎장아찌 등을 만들어 파는 장사꾼들을 보며

이곳 잘 산다는 도시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호흡을 느꼈다.

인도에 걸을 자리도 없이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그들이 펼쳐놓은 물건들을 구경하며 걷는 길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까 싶기도 하고.

그들이 파는 된장이니 깻잎장이니 조금씩 사서 들고 오고 싶었으나 목적이 딴 곳에 있어 못 샀는데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던 배추김치와 깻잎김치가 눈에 선하다. 가끔 서울에 올라갈 때 지하도 계단이나 길거리에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을 보면 겨울의 길바닥이 냉돌처럼 차갑게 가슴에 와 부딪힌다.

그러나.

아직은 이 작은 도시 할머니들의 길거리 좌판은 춥지도 외롭지도 않다.

인도에 자리 잡은 그들의 인원 수도 만만찮고 서로 챙겨주며 거리에서 국수를 시켜 먹는 모습이 좋다.

오토바이와 장사꾼들과 학생들과 장 보러 온 사람들이 시끌벅적 서로 부딪힌다.

발 디딜 곳이 없다.

갑자기 군고구마가 먹고 싶어 지는 겨울의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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