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안주했던 내가, 끝내 애플의 세계로 발을 들인 건 순전히 사진 때문이었다. 이번 신제품 사진이 DSLR 뺨친다는 평가에 레퍼런스 사진 수집이 숙명인 나로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전부터 아이폰으로 갈아타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은행, 증권, 정부 24 등을 사용하는데 불편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었는데, 헬스장 동료들의 에어드롭은 결정타였다.
헬스장을 다니면서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자기들끼리 마치 비밀스러운 아이폰 사용자 클럽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 참을 수 없었다. 나만 소외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인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그 힙하고 날렵한 기기를 손에 넣었다.
생소한 만남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알아가야 했다. 익숙한 관계를 뒤로하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
'쓰다 보면 알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아이폰을 대했지만 그것은 무모한 태도였다.
기계치에 가깝고 사용설명서는 절대 보지 않는 자의 한계는 분명했다.
'아이폰의 가장 큰 장점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유튜브도 찾아보고, 블로그 글도 읽어보며 겨우 본 기능을 마스터할 즈음, 나를 사로잡은 것은 헬스장 동료가 알려준 벨소리 커스터마이징 기능이었다.
'내가 원하는 소리를 직접 벨소리로 만들 수 있다니.'
안드로이드 시절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기능이, 아이폰을 손에 넣으니 왠지 모르게 창작열이 솟구쳤다.
방법은 '앱스토어에서 GarageBand라는 앱을 다운로드하여 원하는 음원 파일을 불러와 30초 이내의 길이로 자른 후 공유 버튼을 통해 벨소리로 내보내고 설정에서 내가 만든 음원으로 선택하면 된다'고 나와있었다. 설명된 텍스트는 분명 한글인데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어느 나라 말이지?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유튜브 영상을 켰다. 천천히 멈춤, 재생을 반복하며 따라 해봤다. 유튜브에서 원하는 음악이나 소리를 녹음해서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바로 피로를 풀어줄 ASMR을 검색했다. 파도소리, 목탁소리, 장작 타는 소리 등등 다양한 소리가 제안되었다. 연습 삼아 여러 개를 만들어 보자 생각하고 먼저 마음에 드는 소리들을 녹음했다.
크리에이터들이 알려주는 대로 아이폰 화면 녹화 기능을 이용해서 소리를 저장했다.
그리고 나서 GarageBand를 열어 편집하고 저장한 다음, 벨소리에서 설정을 해주었다. 복잡하게 보이는 앱 사용법을 밤새워 익혔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몇 번 해보니 처음과 달리 익숙해졌고 재미도 있었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소리로 벨소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뿌듯함에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전화하는 대상마다 벨소리를 다르게 지정하며 창작자의 희열을 만끽했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해 아침부터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종종거렸다. 출장 가시는 부장님과 조 대리님의 어시스턴트를 자처하며 노트북과 자료를 챙겨 배웅했다.
간신히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니, 아직 점심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벌써 허기짐이 몰려왔다. 당분이 든 커피 주입이 시급한 것 같아 탕비실로 향했다. 밤샘 작업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출근 전 이미 한 잔 마셨지만, 카페인의 힘도 이미 바닥난 것 같았다.
맥심 모카골드 두 봉지를 컵에 털어놓고 뜨거운 물을 누르려던 찰나.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월! 월! 월월월 월!"
너무나 선명하고 맑은 골든 리트리버의 짖는 소리였다.
내가 애청하는 골든 리트리버 유튜브를 떠올리며 평소 순하디 순한 그 녀석의 멍뭉미 가득한 얼굴을 상상했다. 잠시 넋을 놓고 미소짓고있던 나는 곧 머리가 삐죽하고 서는 느낌이 들었다.
'어, 이 소리는 내가 어제 유튜브에서 녹화해 벨소리로 만든 그 소리인가?'
'헉, 내가 어제 이걸 누구 벨소리로 지정했더라?'
그제야 뜨거운 커피가 컵에서 넘쳐 손에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내 자리로 달렸다.
아뿔싸, 이미 그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엄 대리님이 내 휴대폰 화면을 보며 외쳤다.
"허 주임! 부장님 전화~"
그 순간 사무실 안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정적의 3초. 마치 화살을 스무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무음으로 해뒀다고 생각했는데 소리 모드였고, 심지어 그 알람은 어제 재미로 이것저것 바꿔가며 설정했던 것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월! 월! 월월월 월!"
극도의 정적 속에서 내 휴대폰은 점점 더 세차게 울어댈 뿐이었다.
허둥지둥 소리를 무음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손이 달달 떨려 쉽지 않았다. 휴대폰은 미끄러져 바닥으로 구르며 통화 버튼이 눌렸고, 수화기 너머로 부장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허 대리, 아까 준 서류 말인데......."
" 아 네! 부장님."
나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두 손으로 휴대폰을 받쳐 들고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안에서는 동료들의 박장대소가 들렸다.
새로운 호기심이 낳은 창작의 결과는 내가 이 아이폰을 사용하는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 같다.
"괜히 바꿨어! 흐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