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30분, 지하철 2호선의 풍경은 늘 그렇듯 피로와 의무로 가득 차 있었다.
좁은 틈에서 눈을 감고 쪽잠을 자는 사람들, 미동 없이 멍하니 선 채 노트북 가방이나 서류가방에 어깨가 짓눌린 이들, 그리고 피곤한 눈빛으로 스마트폰 화면만 응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에 가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교복차림의 청소년들, 무거운 전공서적을 든 대학생들, 그리고 이 복잡한 아침을 뚫고 여행을 시작하려는 부지런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섞여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역삼역에 있는 회사를 가기 위해 나 역시 그들 무리에 끼어있다. 귀에는 노이즈 캔슬링 에어팟을 꽂고 외부 소음을 차단한 채 도어 위 스크린 화면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바라본다.
사람들이 몰려들어오며 점점 좁아지는 나의 영역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향하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외국인이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웨어리즈 강남 스타일, 강남 스타일 스컲쳐"
순간, 나는 '언제 적 강남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종의 소명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한국에 방문한 손님에게 한국의 정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된다는 의무감이다.
"아, 유 원투 고 강남 스타일?"
나는 대답했고, 그녀는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두 명의 일행과 함께 아침 일찍부터 서울 여행을 하기 위해 지옥철에 탔을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야심 차게 대답했다.
"at 강남 스테이션, 유 노? 강남역?"
강남이라면 내가 잘 알지. 역삼역인 회사에서 점심식사 이후 동료들과 산책을 하기 위해 한 바퀴 걷고 오는 코스가 아닌가. 11번 출구 근처에 분명 '강남 스타일'이라고 조성해 놓은 거리가 있고 관련 조형물들이 있었다.
마침 지하철은 교대역을 지나 강남역에 집입하고 있었다.
"디스 이즈 강남 스테이션, 유 캔 고"
나의 단정적인 안내에 그들은 연신 "땡큐"를 외치며 수많은 승객 물결에 휩쓸려 내렸다.
누군가를 도와주었다는 뿌듯함과 으쓱함이 가슴을 부풀게 했다. 덕분에 텐션이 오른 나는 오늘 하루 업무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점심시간.
회사 뒷골목, 돼지불백집에서 식사를 한 후 늘 그렇듯 동기들과 함께 소화를 시키기 위해 산책을 했다. 마침 강남역 근처 '강남 스타일 거리'를 걷게 되니 아침 지하철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요즘 진짜 외국인들 많이 오는 것 같지? 오늘 아침에도 말이야. 지하철에서 어떤 외국인들이 강남스타일 스컵쳐를 찾길래 내가 여기라고 알려줬다니까. 잘 찾았으려나? 하하"
은근히 나의 친절함을 자랑하고 싶어 오늘 아침 에피소드를 동료들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주태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어? 강남 스타일 조형물은 여기가 아니고 삼성역 코엑스 앞일걸?"
장준이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래? 나도 여기가 강남스타일 관련 뭔가가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다. 나도 장준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강남역 11번 출구에 있는 것이 강남 스타일 조형물이라고 생각했다. 코엑스는 가본 지가 10년은 더 된 것 같다. 설마 삼성역에 강남 스타일이 있을 줄이야.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 외국인들이 찾고 있었던 게 여기가 맞겠지? 아닌가? 코엑스에 있는 건가?"
나는 불안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에 돌입했다. 화면 가득,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싸이의 말춤 상징 손 조형물이 위풍당당 자태를 뽐냈다. 장소는 명백히 코엑스 앞, 삼성역이었다.
망했다.
"아, 이런 걸 만들었으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서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만든 지가 벌써 몇 년 전인데 들어본 적도 없네."
민망함과 죄책감에 나는 이름 모를 조형물 관계자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 외국인들은 강남역 11번 출구에 가보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나의 말을 믿고 감사인사를 하며 기대에 부풀어 이곳에 왔을 그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들이 부디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 지금쯤은 코엑스 앞에 가 있길 빌 수밖에 없었다.
회사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힘이 없었다.
단 한 번의 검색 없이 단정적으로 장소를 알려준 나의 무심함과 경솔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나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훼손되었을까 봐 의기소침해졌다.
이번 일은 내게 깊은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해외에서 잠깐 이슈가 될 때만 반짝 관심을 가졌을 뿐, 정작 내가 사는 이 나라, 이 도시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매년 늘어나는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내가 곧 '한국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했다.
당장 누군가, 서울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일에 치여 피곤하다는 핑계로 나조차 가보지 않은 곳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겠는가.
생활인으로서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이고 기본인 것들이 그걸 처음 접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신기하고 특별한 것들로 여겨질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그들에겐 한국의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유행이 지나고 식상해진 것들이 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인기 있고 멋진 것일 수 있다.
결국 나는 길을 잘 못 알려준 죄책감을 넘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얻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제대로 공부하고,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그런 다짐의 의미로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강남스타일 조형물'로 바꾸고 화면 속 조형물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근데 이게 아직도 외국에서 인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