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손 팀장'님과 정말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다.
그저 새로 오신 팀장님에게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친근함을 표시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나름대로 화기애애하게 띄워보려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내가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나는 하루아침에 타인의 콤플렉스를 무심하게 건드린 눈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의 의도가 아무리 선량해도, 나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기분상하게 한다면 그건 곧 폭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제발, 다음번에는 눈치 좀 챙기자. 찰나의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날 밤 꿈에서까지 얼어붙었다.
지난주,
홍보팀 에이스였던 손 팀장님이 우리 마케팅팀으로 발령 나셨다. 새로운 팀을 하나 더 만들어 전투적으로 마케팅을 해보겠다는 회사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인사였다.
팀원들은 환호했다. 인원이 느는 건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능력 있는 사수에게 배우는 것은 우리의 실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혹여 팀장님 업무 스타일이 '밀어붙이기'라면 일이 두 배로 늘겠지만, 그것 또한 내 연차와 경험치를 채울 소중한 기회라 여기기로 했다. 기대감과 살짝의 긴장이 맴도는 새로운 분기의 시작이었다.
5일 전 통보 된 손 팀장님 환영회 겸 회식 날.
평소 술을 안 마시는 직원들이 많아서 점심 회식으로 대체하는 게 우리 팀의 미덕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새로운 팀장님도 오셨으니 저녁에 술 한 잔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친목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모임을 갖자는 게 윗선의 메시지였다.
업무를 마치고 우리 신입사원들이 고심해서 골라 예약한 마포숯불갈비 식당으로 향했다. 막내들은 이미 도착해 냅킨 위에 수저를 가지런히 까는 등 그들의 도리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아휴, 뭐 이런 걸 벌써 다 세팅해 놨어요? 부지런도 하시네. 하하"
나는 막내들의 수고에 감사인사를 전하며, 테이블 중앙보다 살짝 아랫지점, 상사들의 시야가 편안하게 닿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인원수대로 물을 따라 컵을 채웠다. 신입사원들은 내가 따른 물컵을 들어 자리마다 날랐다. 그러고 나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테이블 맨 끝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대부분 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이런 자리가 어색한 직원들은 테이블 끝에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회식자리의 미묘한 법칙이라고나 할까. 상사들과 친목을 다지고 싶거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데 부담이 없는 직원들은 중간에 앉는다. 물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차장님이나 부장님은 늘 테이블 맨 끝에 앉은 사람부터 물고 늘어진다는 것을.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심사병으로 보호하고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숫기가 없고 상사들과 대화를 잘하지 않는 직원들이 회식자리에서 관심 타깃이 되는 건 불변의 진리다. 물론 부장님, 차장님 입장에서는 이런 자리에서라도 벽을 허물고 이야기하며 친해져 보고자 말을 붙이시는 거겠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그것 또한 더 큰 부담이자 신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주변에는 연차가 높고 분위기를 잘 아는 과장님들이 앉아 자발적으로 방패막이되어 준다. 어쩔 수 없이 '라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문장을 부드럽게 차단하거나, 건배로 화제를 유연하게 받아치는 과장님들을 보면 그야말로 삶의 달인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과장님 라인 옆에 앉아, 새로 오신 손 팀장님과의 첫 대화를 고심하고 있었다.
한참 무르익은 회식 자리. 갈비가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며 익고 있었다. 부장님과 차장님은 예상대로 구석에 앉은 신입사원들을 상대로 관심의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유 사원, 손 팀장이 홍보팀에서 에이스였던 거 알지. 지금이야말로 잘 배워서 업무 스킬을 확 늘릴 때야. 시키는 거 잘하고, 이럴 때일수록 상사들한테 잘 보여야지"
"그러니까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겠어. 관 사원! 손 팀장님 잔 비었네!"
부장님과 차장님의 잔소리와 훈계가 섞인 '관심'에 신입사원들의 얼굴은 이미 숯불만큼 빨개져 있었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며, 과장님들은 필사적으로 화제를 돌리려 애쓰고 있었다.
바로 그때, 테이블 중앙에 앉아 계시던 손 팀장님이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차분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말씀하셨다. 술기운과 함께 터져 나온 그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부산 사투리 그 자체였다.
"부장님. 마이 묵었다 아입니까. 쫌 쉬게 나두이소. 이제 들어온 아-들 너무 몰아붙이믄 안 됩니더."
모두가 숨을 멈췄다. 강력한 한방이었다. 회사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손 팀장님의 사투리라 그런지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사투리는 곧 신입사원들을 지키는 굳건한 방패처럼 느껴졌다. 손 팀장님은 곧 엄숙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얼른 집게를 들어 고기를 뒤집으셨다.
".......... 아하하, 내가 좀 오버했나?"
부장님과 차장님은 잠시 머쓱해진 듯했지만 곧 과장님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분위기를 이어가셨고, 신입사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 팀장님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짜릿함을 느꼈다. 회사에서 늘 차도남의 분위기를 풍기며 표준어만 구사하던 팀장님이었다. 저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오는 고향의 언어! 나는 그것이 친근감의 표현이자 진심의 상징이라고 확신했다. 사투리가 튀어나올 때야말로 팀장님의 인간적인 면모라고 착각한 것이다.
나는 이 분위기도 반전시키고, 고향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이용해 손 팀장님과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였다.
"아, 이거 이래 자꾸 뒤집으믄 고기 다 타는데예. 쫌 이따 한 번에 확 뒤집어야 되는 거 아입니꺼."
나는 재빨리 팀장님 쪽으로 몸을 돌리고, 팀장님의 억양을 흉내 내며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팀장님, 저도 부산 아입니꺼! 저는 해운대 쪽이었는데, 팀장님은 부산 어뎁니꺼."
주위 몇몇 직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나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있다고 자부했다.
손 팀장님은 내 말을 듣고 잠시 얼굴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아, 네... 저도 부산입니다."
라고 짧게 답하셨다.
사투리가 이어지며 흥겹게 분위기가 흘러갈 것으로 예상했던 나는, 팀장님의 짧은 표준어 구사에 당황했다. 하지만 눈치 없이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팀장님, 잔이 비었네예. 우리 부산 사람들끼리 마! 끈끈하게 마! 한번 해보입시더. 자, 한 잔 받으시이소. 마!"
나는 어릴 적 서울로 이사 와서 평소에 쓰지도 않는 과장된 부산 사투리를 흉내 내며, 마! 를 외쳐댔다.
내 의도는 순수했고, '우리는 팀장님 편'이라는 애정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손 팀장님은 내가 내민 술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극도로 낮고 차분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허 주임님, 저는 회사에서 사투리 안 씁니다. 그냥 편하게 표준어로 대화해 주십시오."
나는 따귀를 한 대 맞은 듯 두 뺨이 달아올라 얼얼했다. 들고 있던 술병이 아령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친해지고 싶어서 했던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간 것이다. 내 머릿속은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결국 그날의 대참사는 사투리로 친한 척하다 정색당한 사건으로 팀 내에서 전설이 되었다. 나는 이후로 숯불갈비 냄새조차 맡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손 팀장님은 나를 딱 업무적인 거리 이상으로 대하지 않으셨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하는 것 외에는 불필요한 사담이 사라졌다.
회식 자리에서 사투리라는 강력한 어조로 신입사원들의 방패막이되어 준 팀장님의 진심과 배려가 담긴 순간을, 나의 과장된 흉내와 착각으로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아... 이 오지랖과 눈치 없음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오늘도,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감을 지키는 법을 새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