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대행사 서 대리님은 내가 '망고 젤리' 마케팅을 맡은 이후 가장 자주 소통하는 파트너다. 그녀의 카톡 답장은 언제나 간결하고 명료했으며, 낭비되는 단어 하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의 업무 카톡을 단순한 '보고서 전달 수단' 이상으로 만들고 싶었다. 딱딱한 텍스트에 귀여운 이모티콘을 얹어 조금은 인간적이고 말랑말랑한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모티콘을 감정의 보물창고로 여겼다.
"서 대리님, 이번 주 성과 리포트 잘 봤습니다. 역시 서울애드! (엄지 척 올리고 있는 또끼 이모티콘)
다음 주도 파이팅 해주세요! (불꽃을 내뿜고 있는 병아리 이모티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이불에 들어가 자고 있는 곰돌이 이모티콘)"
나는 이모티콘을 이용해 상대방과의 업무가 즐겁고, 당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녀가 나의 호의를 알아채고 딱딱한 텍스트에 웃음 이모티콘 하나라도 더해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서 대리님은 단 한 번도 이모티콘으로 화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네, 확인했습니다." 또는 "잘 전달받았습니다." 같은 건조한 문장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흔들림 없는 절제미를 보며 '역시 프로답다'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 대리님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대학 선배와 저녁을 함께하게 되었다.
"선배, 혹시 서 대리님 아세요? 저랑 이번에 망고 젤리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었어요. 그분 일 정말 잘하시죠?"
나는 넌지시 서 대리님 이야기를 꺼냈다.
선배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피식 웃더니,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설마, 니가 그 이모티콘 폭격의 주인공이냐?"
심장이 쿵하고 멈추는 것 같았다. 술기운이 단숨에 깨졌다. 내가 사적인 친밀감을 위해 보낸 노력이 회사 내에서 '이모티콘 폭격'이라는 조롱 섞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니...
"폭격이라뇨? 혹시 서 대리님이 제 이야기하신 적 있으세요?"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물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선배는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서대리가 담당자의 카톡에 대해 고민한다는 얘기를 들었어. 분명 실력은 좋은데, 업무 카톡에 이모티콘이 너무 많아서 전문적인 느낌이 떨어진다고. 업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가 걱정도 된다고 했대. 아무래도 우리 회사는 눈앞에 보이는 실적이 고가 점수에 포함되니까, 그런 사소한 것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잖아."
나는 사적인 비밀이 노출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모티콘을 통한 나의 인간적인 시도가 그녀의 업무적 신뢰를 갉아먹고 있었다니. 선배의 다음 말은 더 충격이었다.
"서 대리는 네가 보낸 카톡을 보고, 초등학생이랑 대화하는 것 같대. 마케팅 주임이 아니라..."
내가 친밀함이라고 생각했던 이모티콘들이 서 대리님에게는 유아틱함이나 업무에 대한 진지함 결여로 보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릿했다.
선배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나를 향한 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시 말했다.
"혹시, 너 서 대리한테 관심 있는 거냐? 그런 거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라. 그 방법은 이미 텄어. 서 대리는 유아틱 한 사람이 제일 싫대."
그 말 한마디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 대리님의 태도는 나의 사적인 접근에 대한 완벽한 철벽이었음을 말이다. 그녀의 건조하고 절제된 카톡은 단순히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설픈 친밀함에 대한 냉정한 접근 불가 사인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내 진심을 오해받고 싶지 않았고, 괜한 일로 업무까지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친해지고 싶었던 사적인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이후, 나는 서 대리님과의 모든 카톡에서 이모티콘 사용을 중단했다. 습관처럼 이모티콘에 손이 갔지만, 매번 자존심을 걸고 손가락을 봉인시켜야 했다.
"서 대리님, 망고 젤리 캠페인 관련 품의 금액 확정되어 전달합니다.(첨부파일 확인 요망)"
"화요일 10시 회의로 변경가능합니다. 컨펌 완료"
대화는 군더더기 없이 칼날처럼 명료해졌다. 내가 보낸 문장들은 마치 당신의 피드백을 받아들여 로봇처럼 일만 하는 중이라는 걸 외치는 것 같았다. 오해를 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나의 진실된 감정을 숨기고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비즈니스 파트너' 가면을 쓰는 것뿐이었다.
이제 서 대리님과의 카톡 대화창에는 감정 없는 효율성만 가득하다. 차갑고 건조한 텍스트들 사이로 서리만 내릴 뿐이었다. 그녀는 이 간결함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유아틱 한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티콘이 사라진 대화에는 평행선이 생겨났다. 아무리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적당한 거리감. 나는 그녀를 향한 관심의 문을 강제로 닫아야 했고, 나 스스로를 감정을 숨긴 거래처 직원 아무개로 만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모티콘 '엄지척'과 '하트'는 이제,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그녀와의 관계에 찍힌 낙인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나의 흑역사는 그렇게 흉터를 남긴 채, 프로페셔널한 카톡 뒤에 봉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