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인지 불능으로 인한 지하철 민폐일지

by 유로운자

오늘은 동네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엄 사장의 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몇 개월 전부터 미리 부탁받아, 나는 그를 대신해 이번 주말 서점 오픈 임무를 맡게 되었다. 종종 놀러 가기도 했고, 급할 때 아르바이트도 도왔던 터라 그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작은 동네 서점 문은 정확히 10시 30분에 열어야 했고, 나는 오픈 직후의 서점 내부를 찍어 엄 사장에게 보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물론 의무는 아니었지만, 자리를 비운 친구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할까. 나 스스로 그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묻지 않아도 늘 그렇게 해왔다.


집에서 서점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청라역에서 공항철도 서울역 방면 일반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혹시 시간약속을 못 지키거나 혹시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까 봐 스크린과 방송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긴 이동 시간이 이어지자,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은 이 긴 통근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외부 소음을 완벽히 차단한 덕분에, 나는 내 세상에 깊숙이 몰입할 수 있었다. 릴스로 시동을 걸고, 듀오링고 오늘 분량의 학습을 끝낸 뒤, 유튜브 알고리즘에 잠시 몸을 맡겼다가 이내 모바일 게임의 장엄한 배경음악과 화려한 효과음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이 깔끔한 소음 차단이 곧 치명적인 실수의 서막이 되리라고는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레이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 머릿속의 시계가 문득 경고음을 울렸다.

'지금쯤이면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나는 게임 화면을 밀어내고 시계를 확인했다. 10시 20분. 서점 근처인 홍대입구역에 도착 시간이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황급히 이어폰을 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광판에는 이미 '홍대입구역'이 표시되어 있었고, 내릴 승객들은 분주하게 출입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약속된 시간에 늦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출입문쪽으로 뛰어나갔다.


바로 그때, 급하게 내리려던 내 팔꿈치가 문가에 서 있던 여성의 어깨를 치고, 곧바로 그녀가 매고 있던 핸드백을 강하게 후려쳤다.

"퍽, 데구루루~"

균형을 잃은 가방은 바닥에 곤두박질쳤고, 가방 안에 있던 지갑, 핸드크림, 틴트, 이어폰 케이스 등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소란을 일으켰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우리 쪽을 쳐다봤고, 그 와중에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은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피해 한쪽으로 돌아 들어왔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의 물건이 밟히지 않도록 최대한 몸으로 막으며 말했다.

"아, 진짜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해서 그만..."


오픈 인증샷이고 뭐고, 이 참담한 민폐를 수습하는 게 가장 먼저였다. 나는 서둘러 무릎을 꿇고 흩어진 물건들을 주워 핸드백에 넣었다. 여성은 괜찮다고 했지만, 목소리에는 본의 아니게 '왓츠 인 마이 백'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짜증이 묻어났다. 나는 죄송함과 민망함에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물건들을 꼼꼼히 주웠다.


저 멀리 굴러간 마지막 틴트 하나를 주우려던 찰나, 야속한 지하철 문은 '띠리리리링!'소리를 내며 굳게 닫혀버렸다. 오직 빠른 수습에만 정신이 팔려, 그전에 나왔을 문 닫힘 방송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

단 한마디 탄식을 내지르며 망연자실, 유리문 너머의 홍대입구역 플랫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릴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지하철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물건을 모두 돌려드린 나는 조용히 죄송하다는 말을 한 번 더 전하고, 다른 객차로 이동했다. 더 이상 그 여성분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고 모든 사람의 동정 섞인 시선을 감당하기에는 한 정거장의 길이가 너무나 길었다.


다음 역인 공덕역에서 내린 나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플랫폼을 가로질러 반대편 열차에 몸을 던졌다. 약속 시간보다 7분이나 늦었지만, 나는 헐레벌떡 서점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셔터를 올리고, 환기를 하며 아침 햇살을 서점으로 끌어들였다. 얼른 핸드폰을 들어 서점 내부를 찍은 후 엄 사장에게 전송했다.


메시지와 함께 짧은 사과를 덧붙였다.

"엄 사장. 미안. 지하철에서 해프닝이 좀 있었어. 10:37 오픈 완료!"

다행히 친구에게 온 답장은 담백했다.

"오케이, 잘 부탁해. 고맙다."


그제야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 보니 애플워치의 심박수가 겨우 진정되었다. 차분히 생각해 보니 지하철에서의 상황을 만들어낸 주범은 노이즈 캔슬링으로 귀를 막고, 게임에 빠져 눈을 가린 나의 안일힘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만의 세계에 빠져 타인과의 사회적 소통을 차단했던 것이 문제였다.


지하철 바닥에 쏟아졌던 물건들의 잔상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다른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 앞에서 만들어낸 나의 흑역사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아무리 긴 여정의 거리라도, 이어폰과 화면에 의지하는 대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변 상황을 인지하겠다고 다짐했다. 잠시 나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것이 단순히 역을 지나치는 정도의 실수를 넘어, 자칫 큰 사고나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를 잘 돌아보고, 타인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적 책임감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운, 주말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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