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카페에서 만난 '충전 빌런' 덕분에 깨우친 양심

by 유로운자

나는 주중에는 종합식품회사의 마케터 허 주임으로 살며 숫자와 싸우고, 주중에는 웹소설 작가로 변신해 글자 수 마감에 쫓긴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다 보니, 나는 '최대 효율'을 삶의 신조로 삼게 되었다.


집은 작업 공간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좁은 책상 앞에 앉으면, 청소하지 않은 빨래 바구니, 쌓여있는 설거지, 봐야 할 밀린 넷플릭스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생활의 흔적들이 나를 책상에 붙어있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었다. 나는 그 유혹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헤매다 늘 마감에 쫓겨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도무지, 회사에서의 냉철한 허 주임이 될 수도 없고, 판타지처럼 모든 게 이루어지는 웹 소설 주인공이 될 수도 없었다. 나는 가장 효율적인 외부 작업실을 찾아 늘 방황해야 했다.


나의 최종 정착지는 김포 외곽에 자리한 창고형 베이커리 카페였다. 높은 층고와 넓은 간격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선 뭘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쓸거야.' 나는 그렇게 착각했다. 특히 주말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손님이 대부분이라, 다들 자기 일에 바빠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그날도 나는 마감을 앞두고 10인용 대형 원목 테이블 중 가장 구석 자리를 차지했다. 대형 카페의 높은 층고 아래, 나는 곧 나만의 개인 오피스를 구축했다. 글을 쓸 노트북과 자료 서치용 태블릿, 피드백 확인용 스마트폰까지, 배터리가 없어 작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충전기를 테이블 콘센트 구멍에 꽂았다. 그 옆에 스케치용 노트와 각종 프린트물,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까지. 10인 테이블의 3분의 1이 순식간에 내 영역이 되었다.


가족단위 손님들은 모두 안락한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좌석을 선호하니까 긴 테이블 쪽으로는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넓은 공간에서 내가 이 정도 사용하는 건 괜찮다고 합리화했다. 공짜로 쓰는 것도 아니고, 가장 큰 사이즈 음료와 케이크까지 시켰으니 그만큼 비용을 지불한 것이라고 여겼다. 가끔 빵과 음료를 들고 내 옆을 지나가며 크게 웃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내가 이 공간을 너무 이기적으로 쓰나 싶기도 했지만, 나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며 그 불안감을 눌러버렸다.


햇빛의 각도가 달라졌는지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 내 노트북을 비추었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 둘러보니 카페는 거의 만석이었지만, 내가 있는 회의용 테이블은 여전히 나만의 오피스로 사용되고 있었다. 블라인드를 내리려는데 거대한 배낭을 멘 남자가 10인 테이블의 남은 영역으로 걸어왔다.


나는 속으로 '아 다른데 앉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나를 전혀 살피지 않고 자신의 세팅을 시작했다. 그의 장비는 나의 오피스를 압도하는 규모였다. 노트북은 물론, 21인치 휴대용 모니터, 데스크톱 미니까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나의 세팅이 소규모 사무실이었다면, 그의 세팅은 대기업 서버실 같았다.


나는 속으로 불쾌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력 확보에 나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가져온 확장형 멀티탭을 테이블 콘센트에 꽂았다. 그의 장비들에 달린 전기선들이 멀티탭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을 보자, 나는 숨이 막혔다.


남자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타타타탁!'소리를 내는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N브랜드 키보드 기획전에서 봤던 신상 모델이었다. 경쾌한 소리에 나도 갖고 싶어 고민했던 제품인데, 막상 내 앞의 남자가 사용하는 것을 보자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키보드로 여겨졌다. 그 소리는 높은 층고를 타고 더욱 날카롭게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 나의 집중력은 산산조각 났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 사람 너무한 거 아니야? 가족들이 쉬는 주말에, 소음을 내고 모든 전기를 독점하다니! 너무 이기적이야!'

나는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물론 속으로.


하지만 그 순간, 나의 시선은 그의 극단적인 멀티탭에서 내가 펼쳐놓은 코드 3개로 돌아왔다.

'모니터와 본체만 없지. 내가 이 사람과 뭐가 다르지?'


나는 그를 카페의 빌런이라고 비난했지만, 그의 모습은 내 이기심이 극대화된 거울이었다. 내가 눈치 안 보이고 안심했던 이 높은 층고와 넓은 공간은, 사실 나의 민폐를 숨기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 이기심을 증폭시키는 확성기였음을 깨달았다. 나의 효율성은 타인의 평화를 방해하는 오만한 행동이었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작업할 염치가 없었다. 나는 죄책감이 들어 모든 충전 코드를 뽑고, 서둘러 짐을 가방에 넣었다. 마치 죄가 들통난 사람처럼, 나는 고개를 숙이고 10인 테이블을 벗어났다.


나는 카페 구석의 가장 작고 콘센트가 없는 2인용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카페를 나가고 싶었지만 아직 마감을 짓지 못한 일이 노트북 안에 버티고 있었다. 2인용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나는 반성했다. 이미 완충 된 전자기계들은 콘센트에 계속 꽂아 놓을 필요가 없었고, 넓은 테이블은 일행이 많은 손님들에게 양보해야 했다.


이제 나는 안다. 넓은 공간과 높은 층고는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두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평화와 자유는 서로가 세심하게 배려할 때 함께 누릴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제 콘센트가 없는 자리에서도 충분히 마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의 '풀 옵션 남자' 덕분에 나는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반면교사라고 했던가. 진정한 삶의 가치는 '최대 효율'이 아니라, '최대 배려'임을 깨우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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