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하다 망신당함. 팩트 체크 필수!

by 유로운자

'브레인 파워 오트밀' 신제품 홍보 아이디어 회의가 있는 날 아침, 나는 잔뜩 들떠 있었다. 발표를 준비하며 만든 내 ppt를 보며 다들 획기적이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다. 탕비실에서 유 사원과 함께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도 곧 있을 회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이번 신제품은 정말 특별했다. 등 푸른 생선에 많이 함유된 오메가-3를 첨단 미세캡슐화 기술로 추출하여, 비린내 없이 견과류와 함께 시리얼에 주입한 야심작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진행된 관능평가에서도 전문가 패널들로부터 영양뿐 아니라 맛까지 '우수'등급을 받았다.


나는 이 제품이 생선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뇌를 많이 써야 하는 수험생에게 완벽한 아침 식사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고소한 맛과 효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서 분명 엄마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출시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유 사원, 오늘 내 아이디어 나오면 팀장님이 분명 '이거다!' 하실걸?" 나는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유명한 '성공 과학 팟캐스트'에서 획기적인 내용을 들었거든. 다른 회사들이 견과류가 건강에 좋다는 뻔한 이야기로 마케팅할 때, 우리는 소비자들의 잠재력을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유 사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잠재력이요? 좀 어렵게 들리는데요?"


"과학적인 팩트가 있잖아.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뇌의 10%만 쓰고,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만이 그 이상을 사용한다는 거 알지. 이게 하버드에서 연구한 자료가 있대. 나는 우리 신제품이 이 90%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열쇠라고 키워드를 달 거야. 우리의 오트밀이 부스터가 되는 거지. 하하하. 벌써부터 매출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유 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해주었다. 나는 그 말에 힘입어 회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회의가 시작되고, 마침내 내 발표 순서가 되었다. 나는 단상에 서서 파워포인트를 넘겼다.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지만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발표를 시작했다. 분명 이번이 나의 커리어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최대한 내 아이디어를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마케팅 2팀 주임 허저입니다. 제가 준비한 이번 신제품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직 쓰지 않은 90%의 뇌를, 브레인 파워 오트밀이 깨운다!'

저는 이번 슬로건에 과학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충격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그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90%의 잠재력. 이걸 아침에 깨우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처럼 뇌를 더 쓸 수 있고, 원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주는 게 요점입니다. 또한 혈관 청소부로 불리는 오메가-3까지 함께 섭취할 수 있는 강점까지 있으니 이 부분을 마케팅의 강력 포인트로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


나는 준비한 내용을 매끄럽게 발표한 후 질문을 받았다.


그때, 자문으로 동석한 전략기획팀의 '이엄 연구원'이 손을 들었다.

"허 주임님, 고민 많이 하신 것 같네요. 추진력은 훌륭합니다만..."


그녀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차분하게 뒷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인간이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내용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오해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인들보다 뇌를 더 썼다는 이야기도 후대에 와서 와전된 거예요. 사실, 현대 신경과학분야에서는 반대로 완전히 부정한 바 있어요. 뇌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나 잠자는 동안에도 모든 부분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순간, 내 머릿속의 회로가 모두 끊어지고 뇌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내가 팩트라고 믿었던 정보가 사실 가짜 뉴스였다는 게 명백히 드러났다. 내가 검색하고 알아본 것들이 진실이라고 우겨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상대는 생명과학분야 박사 출신이 아닌가. 괜히 나섰다가 더 창피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어서 나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팀장님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다음 발표자로 진행을 서두르며 상황을 수습했다.


이후 회의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손 대리나 양 과장님의 발표 내용은 희미한 촛불의 그을음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이 연구원의 논리 정연한 반박으로 가득 찼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얄팍한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중요한 발표자리에 사용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팀장님이 나를 따로 호출했다. 팀장님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허 주임, 마케팅은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팩트 체크는 기본 중의 기본이야. 우리 회사는 신뢰를 파는 곳인데, 검증되지 않은 낭설로 고객을 현혹하려 해서는 절대 안 돼."


팀장님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특히 건강에 관련된 내용은 민감한 영역이야. 법을 지키며 광고도 해야 되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 써서 준비해야 돼. 소비자를 혼동하게 만드는 홍보는 금지된다는 거, 그걸 지키지 않으면 과대광고로 행정처분 받는 거 자네도 잘 알 거야."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팀장님의 훈계는 회의실에서의 창피함보다 더 따끔하게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이 일로 나는 출처를 세 번 이상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쉽게 얻은 자극적인 정보로 아는 척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 모든 정보는 끈질기게 검증하고 사실에 기반해 활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곧바로 거짓 정보를 흘리는 팟캐스트 구독을 취소하고, 신뢰할 만한 과학 전문 서적과 논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뇌는 100%를 쓰고 있지만, 내가 사용했던 지식은 알량한 10%짜리였다는 걸 그 쓰라린 흑역사가 깨우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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